전국에서 차 선생이 가장 많은 도시는 어디일까. 차인들은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아니라 대구라고 추정한다. 보통 3년 이상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자격이 주어지는 차 사범이 가장 많다는 말은 차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얘기다.'한 집 건너 한 집이 다례원'이라고 할 만큼 대구는 차를 사랑하는 도시다. 전국 차인의 절반 가까이가 대구경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의 생산지도 아닌 대구가 이처럼 차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백다례원 배근희(72) 이사장은 영남의 선비문화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고려·조선시대 다화(茶畵)에서 다동(茶童)들은 차를 우려내는 한편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이처럼 선비들이 차를 즐기면서 발전시켜온 것이 자연스럽게 영남지역에 자리잡게 됐다는 것.
또 역사적으로 차 문화가 시작된 경주를 안고 있어 그에 따른 자부심도 크다.
이런 역사적 이유와 함께 차에 일찍 눈을 뜬 원로들의 역할이 크다.
다농 이정애(84) 종정다례원 명예 이사장은 1940년대 차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한국 차를 외국에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종정다례원 정금선 이사장은"이정애 선생님은 신라차를 정립하는 등 우리나라 차 인구발전에 큰 몫을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청백다례원 배 이사장은 대구 차인들을 결집해 대구세계차문화축제를 여는 등 대구 양대 차맥을 형성하고 있다. 배 원장은 일연선사 추모다례제, 원효선사 탄생다례제 등을 오랫동안 열고 있다. 또 몇 년 전 타계한 다은 최혜자씨는 2004년 본인이 사용하던 다기류 3천여점을 계명대에 기증,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대구에는 차관련 단체들이 유난히도 많다. 종정다례원·청백다례원·영남차회 등 대구 차의 선구자격인 차인들이 이끄는 역사 깊은 단체를 비롯해 여기에서 가지에 가지를 뻗은 지회까지 합하면 수백개가 된다고 차인들은 입을 모은다. 지회들은 저마다 차 전문인을 양성하고 있고 여기에서 배출된 차 사범들은 동사무소, 복지관, 문화센터 등을 다니며 차를 전파하고 있어 그 숫자는 헤아릴수 조차 없다.
차를 학습하는 연령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유치원에서 다도교실을 연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종정다례원 정 이사장은 "다도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기다림을 배울 수 있고 인성교육에도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차를 다루는 찻집의 역사도 깊다.
대구에서 첫 출발한 전통찻집은 1982년 무궁화백화점 내에 문을 연 여천다원. 83년 시내 반야다원, 삼덕동 선 다원 등은 유명하다. 87년에는 산하루·차밭골·솔버등·예그린·다례헌·설록원·오솔재·한솔·다우정 등 열 개가 넘는 찻집이 한꺼번에 생겨났다. 한 때 주춤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차 전문점 위주로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홍익차문화원 최정수 원장은 87년 당시 대구에서 찻집을 비롯한 차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 '경제적 안정과 우리 문화 찾기 운동, 차 원로들의 발 빠른 교육'을 들었다."당시 최고 취미는 일본식 꽃꽂이였어요. 꽃꽂이가 하향길에 접어들 때 차문화가 싹텄고, 꽃꽂이 인구가 차 인구로 자연스레 흡수됐습니다. 그리고 이정애·배근희 차 원로들이 전국적으로도 발빠르게 차 교육을 시작한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대구에서 차 재배도 가능하다. 청백다례원 배 이사장은 집 마당에 차 나무를 심어 수확하고 있다. 또 한국홍익차문화원 최 원장과 이정웅 대구얼찾기모임 대표는 20여년 전 팔공산에 차 나무를 심어 차 재배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기도 했다.
대구가 오랜 차 역사와 많은 차 인구가 있지만 한계도 많다. 다른 도시와 달리 대구 소재 대학에는 아직 정식 차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지 않다는 점과 박물관·교육관·기념비 등 차와 관련된 상징물이 없다는 점은 차인들이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한국홍익차문화원 최 원장은"차는 복식·도자기·철학·문학·과학 등 모든 장르를 포함하는 종합예술인 만큼 대구가 이를 잘 발전시키면 국제적인 차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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