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비밀번호의 진화

2차 대전 당시 로스 앨러모스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노리처드 파인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밀번호를 어딘가에 적어 놓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면 관심분야나 자신과 관련이 있는 번호들을 비밀번호로 사용한다는 것을. 그가 동료 프레더릭 더 호프만의 서류함을 열어 젖힌 27, 18, 28이란 세 숫자는 파이(π)만큼이나 중요한 수학상수인 자연로그의 밑 e(2.71828…)였다. 더구나 그는 플루토늄 생산에서 중성자 방출 등 원자폭탄 제조공정을 담은 모든 중요한 금고와 서류함이 모두 같은 번호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비밀번호로 잠가 둔 금고를 열 수 있는지 장난했을 뿐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CIA 요원인 주인공 톰 크루즈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컴퓨터에 접속해 비밀명단을 빼내는 장면이 나온다. 작전 수행 중 혼자만 살아남은 뒤 자신이 이중간첩으로 지목됐음을 알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직접 CIA에 침투한 것이다. 스릴 넘치는 영화다.

청와대 전산망이 뚫렸다.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에서 1천만 명 이상의 회원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하나로텔레콤은 고객 600만 명의 개인정보를 공공연히 텔레마케팅 업체에 넘겼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비밀번호가 알려지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면 개인의 신상이 드러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비밀번호에 대한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인터넷 전문 잡지가 조사한 네티즌들의 비밀번호는 웃기고 싱거웠다. 1위가 'passward'였고 2위가 '123456'이었으며 'qwerty'가 3위였다. 비밀번호라 할 것도 없다.

사실 그 비밀번호라는 것이 그렇다. 보통은 한 가지를 정해 이곳저곳에서 쓰기 십상인데 어쩌다 요구조건이 달라지면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숫자와 문자를 섞어서 쓰라거나 4자리 또는 8자리 등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 하자 바위문이 열리고 도둑들이 훔쳐 놓은 수많은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아날로그식 비밀번호는 어떨까. 지문이나 눈빛, 얼굴, 목소리, 얼굴모습 같은 방식으로. 하긴 얼굴을 아예 통째 바꿔 버리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니 그저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귀담아 둘 수밖에.

이경우 논설위원 the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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