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파크 아베뉴에 있는 1차 대전 때의 무기창고인 아모리에서 '스트라빈스키 페스티벌(Stravinsky's Sacred Masterpieces)'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뉴욕은 이곳저곳에서 콘서트가 열리지만 '아모리(Amory)'에서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파크 아베뉴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바깥에서, 층층대에서 칵테일파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황님이 이 길로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스트라빈스키 페스티벌에 왔는데 느닷없이 교황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나도 와인잔을 들고 길거리에서 서성입니다.
뉴욕에는 길거리에 걸린 깃발에도 교황사진이 있고 모든 TV 채널에서도 교황을 보여줍니다. 성당으로, 유대인 회당으로 그리고 신학교로, 그라운드 제로, 양키 스타디움으로 그 분이 가시는 곳은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우리에게 비춰줍니다. 하지만 어느 길로 가시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파크 아베뉴에 어둠이 내리자 저 멀리서부터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명멸하며 옵니다. 모토 사이클 한 떼가 에스코트를 하며 바티칸 노란깃발과 미국국기를 펄럭이며 리무진이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파크 아베뉴는 다시 조용한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갑니다. 벌써 콘서트는 시작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미사곡이 옛 무기창고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무기창고가 대성당이 되어 성음악이 울려 퍼지고 순간은 감동이었습니다.
이어졌다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합창단의 라틴말 미사곡이 '아모리'에서 울려 퍼져 나갑니다. 그 높은 천장으로 오르다 말고 한 바퀴 돌아 파편처럼 부서져 이어지고 소리가 흩어지는가 하면 다시 모아져 단편적으로 들립니다.
스트라빈스키를 지휘하는 사람은 조지 스틸이라는 젊은 지휘자입니다. 그의 손에서 스트라빈스키가 부서지고 깨어져 새로운 소리가 되듯이, 교황님 지휘 안에 부서진 세상이 살아나는 듯합니다. 9·11테러로 인한 뉴욕의 아픔들이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창고에서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파크 아베뉴 옛 병기 창고에서 '레퀴엠'을 듣습니다. 전쟁이여 가라!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들의 시편이 심포니가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백영희 시인·뉴욕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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