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민등록 대체수단 '아이핀' 이유있는 외면

옥션을 비롯해 다음, 하나로텔레콤 등 대형 업체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꼬리를 물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24일 부랴부랴 '개인정보침해방지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주민등록 대체수단(i-PIN) 도입을 의무화하고, 만약 금융기관처럼 개인 신원확인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민번호나 비밀번호 암호화를 의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시행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데다 기존 정책을 되풀이해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아이핀 안전할까?

'아이핀'이란 인터넷에서 주민번호를 대신할 수 있는 사이버 신원 확인번호를 일컫는 것으로 공인인증서 등을 관리하는 5개 신용평가정보사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2005년부터 정보통신부에서 시행중인 이 제도는 주민등록번호와는 달리 생년월일, 성별 등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으며 언제든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아이핀은 대안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핀 역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아이핀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휴대전화인증, 직접 대면 등 총 4가지의 인증방법이 있다. 정보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는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신용카드나 휴대전화가 있으면 타인이 대신해 발급받을 수 있는 취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남의 행세'를 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서상기(한나라당) 의원은 "공인인증기관과 신용카드사, 이동통신사들이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보유하지 않아 악의적으로 사망한 사람의 정보를 통해 아이핀 발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아이핀 사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가 유출될 때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진보넷 장여경씨는 "이들 사업자 역시 해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며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개인식별번호가 아닌 '목적별 번호(해당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번호)'가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도 갸우뚱

아이핀이 시행된 지 벌써 2년을 넘어섰지만 지금까지 아이핀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 사이트는 40여개에 불과하다. 지난 2월 기준으로 가입자는 약 11만4천여명뿐.

이렇게 아이핀이 외면당하는 이유에 대해서 온라인 업계는 "발급 과정이 복잡한데다 금융결제 등이 필요한 쇼핑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기존에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가입한 사이트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추가로 아이핀을 이용해 가입할 사이트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실효성에 의문을 주고 있다. 기존 가입된 사이트에서는 이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

아이핀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업종도 있다. 해외구매대행업을 하고 있는 모 사이트 관계자는 "해외구매대행을 할 경우에는 금융결제뿐 아니라 세관의 통관절차를 거쳐야 해 주민등록번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아이핀 도입을 담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으로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나 상정이 가능해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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