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개미가 부지런하다고?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종(種)으로는 개미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개미 한 마리의 무게는 사람의 100만분의 1도 채 안 되지만 지구상의 모든 개미를 합하면 인류의 총 몸무게보다 무겁다고 합니다.

개미는 근면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밝혀낸 개미의 속성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일개미 집단에서 실제로 일하는 녀석들은 전체의 15~20%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80~85%는 바삐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냥 왔다 갔다 일하는 척할 뿐입니다. 그런데 일 열심인 개미들을 따로 모아놓으면 이 중 15~20%만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린다고 합니다.

따져보면 먹고살기 위해 사람만큼 많이 일하는 종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발간된 OECD 2008년 통계연감을 보면 한국 근로자들의 연 평균 근로시간은 2천357시간으로, OECD 30개국 가운데 1위였습니다. 문화·여가를 위해 지출하는 시간은 조사 대상 21개 OECD 회원국 가운데 20위였습니다.

원시 수렵시대 인류는 하루에 한두 시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소비량 이상의 잉여 생산을 해냈습니다. 남태평양의 한 마을 이야기입니다. 천국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그 마을의 바다는 황금어장입니다. 낚싯대를 던지면 고기가 줄줄 올라옵니다. 어부들은 하루 한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놉니다. 마을에 놀러온 서양인이 어부에게 권합니다. "모터가 달린 저인망 배를 사지 그래. 먼 바다로 나가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다." 어부가 묻습니다. "부자가 되면 뭐가 좋아지는데?" "멋진 휴양지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내며 편하게 살 수 있지." 어부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지금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사각의 링 같습니다.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어린 자녀들은 '공부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붕어빵 같은 지식을 주입시키며,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감성적인 시기를 빼앗고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약육강식의 비정함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물신주의와 천민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후군을 발견합니다. 시장 좌판 할머니와 구멍가게가 대형마트와의 무모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경쟁도 요구합니다. 시장 경쟁 기치 아래에서 작은 것들의 소중함은 매몰됩니다.

시장이 도덕적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사람일 겁니다. 성장 제일주의의 달콤한 과실은 소수가 누리지만, 거품이 꺼질 때의 고통은 다수에게 전가됩니다. 소수의 지나친 탐욕은 전체에게 큰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왕벌과 일벌은 똑같은 유충으로 태어나지만 섭취하는 먹이에 의해 운명이 갈립니다. 부화후 3일 동안 로열젤리를 먹으면 일벌이 되지만, 6일간 먹으면 여왕벌이 됩니다. 모두들 교육을 통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고 하지만 속내는 자기 자녀에게 로열젤리를 더 먹여 여왕벌로 키우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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