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이야기] 성씨와 가족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통성명하고, 그러다 성씨가 같으면 본관도 물어보고 항렬도 맞춰본다.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우리사회의 모습이고, 특히 유교적 전통을 가진 동양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족중심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면 중국은 어떨까? 한때 유교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던 중국사회에도 여전히 성씨에 대한 특별한 정감이나 연대감이 남아 있을까?

당연히 전통 중국에는 동성동본에 대한 결혼금지의 풍습을 비롯해서 혈족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있었다. 적어도 청나라 말기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날의 중국인에게서는 성씨에 대한 귀속감이나 동질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원인은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설정된 '반봉건'이라는 혁명목표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전통사회에 존재하던 모든 제도와 관습들을 봉건사회가 만든 불합리한 제도라고 치부하였다. 그 중 가장권, 군주권, 신(神)권, 부(夫)권을 사람을 속박하는 4대 족쇄라 규정하였는데, 특히 성씨와 관련된 가장권을 가장 큰 원흉으로 낙인찍었다. 엄격한 봉건 종법제도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체계를 유지하면서 구성원을 속박하고 압박해왔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해방과 자유를 표방하는 공산주의 혁명목표와 상충되는 족(族), 대가족제도는 첫 번째 타도대상이 되었다. 혁명이 진행되면서 인간관계에서 친밀도를 결정했던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보편적·평등적인 인간관계들이 재구성되었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 약화되고, 자신의 성씨에 대한 동질감도 떨어졌다. 대신 국가나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동질감과 귀속력이 점차 강화되었다. 문화대혁명(1960~1970년) 시기 종족관념이 가장 심하게 파손되었다. 전통유물, 가보들이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심지어 어른 공경조차 봉건예절이라고 비판받았다. 모든 제사 행위는 봉건제의 산물이라고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주종관념이 사라졌고, 동시에 성씨에 대한 동질감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달라지고 있다. 복고열풍이 불고 있다. 한때 봉건이라 하여 완전히 삭제해 버렸던 전통역사를 복원시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유입된 서구문화가 그나마 남아있던 중국의 가족까지 해체해 버린 지금에 이르러 중국인들은 각성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에 점점 소홀해지고, 인간을 하나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인 스스로를 발견한 것이다. 중국은 지금 노동절 휴일을 줄이고 단오, 추석 등 전통 절기를 휴일로 지정했다. 혈족중심의 가족제도가 청소년문제와 노인문제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중국은 성씨에 대한 귀속감을 비롯하여 가족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예절과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자존심을 걸고 있다.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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