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일왕? 덴노?'
일본 국왕의 호칭을 두고 시끄럽다. 지난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왕궁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왕비를 만난 자리에서 일왕을 '천황'으로 지칭하면서 넷심이 들끓은 것. 네티즌들은 일본 국왕을 천황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제국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고, 다수에 밀리긴 했지만 외교적인 공식석상에서 천황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white hand'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황제란 '왕중의 왕'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은 그렇게 부를만큼 힘이나 위상이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영국도 여왕이라고 부르는데 자국내에서나 통하는 천황이라는 칭호를 굳이 우리가 부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ID '그분만세'는 "천황이라는 단어속에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내포돼 있기 때문에 천황이라고 부르게 되면 그들의 제국주의를 인정해주는 결과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ID 'PSYlove'는 "중국의 황제를 부르듯 일본의 천황 역시도 그대로 불러줘야하는게 옳다"라며 "고유 칭호의 하나이고 현대에서 천황을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못 불러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예 천황(天皇)의 일본식 발음인 '덴노'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샘터'라는 네티즌은 "우리가 칼리프를 그대로 부르고 '신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듯 일본왕도 일왕이라 칭하고 외교적으로는 '덴노'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호칭 문제는 대통령의 방일때마다 나오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국민 정서와 국제 관례가 늘 충돌하는 셈. 사정이 이렇다보니 언론도 헷갈린다. 대부분 언론이 일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MBC는 22일 뉴스에서 천황으로 지칭했다가 네티즌들의 호된 비난을 받았다. 연합뉴스는 이 대통령과 일왕이 만난 장면을 촬영한 사진물에서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황후'라는 앞뒤 맞지 않는 설명을 달기도 했다.
정부 공식입장은 '천황'이다. 호칭 논란이 벌어지자 외교부는 "상대국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정부는 일본에서 부르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왔다"며 "특히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천황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제 관례라는 말이다.
학계나 전문가들은 천황이라는 표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해당 국가의 제도나 관습을 존중하는 게 국제 관례이고 외국에서도 '덴노'나 'The Emperor'라고 부른다는 것. '총통'이 대통령보다 상위 개념인데도 대만 총통으로 부르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관례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은 칼럼에서 '천황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일본쪽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일왕이라고 격하한다고 해서 권위가 내려 앉는 것은 아니다. 일왕(日王) 표현은 양국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가져가는 데는 부적절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는 호칭은 불러달라는대로 불러 주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천황의 유래는 서기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천황은 나라 시대(서기 710~784년) 초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국 당나라의 '천황대제'에서 따온 명칭. 일본의 왕실제도는 2천년간 지속됐지만 19세기 전까지 사실상 군사력이 없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했다. 천황이 본격적으로 신격화된 건 1868년 메이지 유신이 계기였다. 당시 메이지 지도자들은 막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왕실의 직접적인 통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천황을 민족 통일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이후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천황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천황은 정치적으로는 의례적인 존재지만 일본 헌법은 천황을 국가 및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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