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⑦밀양(2007)

은밀함과 밝음 그 가운데 갇힌 한없는 절망

밀양은 비밀스러울 밀(密)에 볕 양(陽)자를 쓴다. 영어로 하면 'Secret Sunshine'이다. 볕은 밝은데, 은밀하고 비밀스럽다? 역설적이다.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남편이 죽었다. 누구 말로는 다른 여자와 바람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다. 결혼을 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도 접었다. 그냥 애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그것이 내 삶의 최선이라 믿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그 남자의 햇살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싶어 생판 모르는 밀양에 왔다.

마지막 희망인 아들, 살아가는 마지막 힘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마저도 빼앗긴다. 울 힘마저 없다. 속에 꽉 들어찬 어떤 것이 그 울음마저 틀어막고 있다. 웅크린 연약한 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꺼이꺼이' 거리는 울림뿐이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다. 그저 세상에 설 수조차 없어 땅에 최대한 엎드린, 한 마리 애벌레의 소리 없는 항변이다.

최근 우리는 아이들이 유괴돼 끔찍한 주검으로 돌아온 사건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오열하다 쓰러진 어머니의 절망도 함께. 갓 피어나는 자식의 참혹한 죽음을 확인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이 세상의 완벽한 용서는 복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뿌린 만큼 거두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인간의 동물적 공식이다. 그러나 복수를 통한 용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신을 믿는 인간이 할 일이라고 학습되어왔고, 그것이 종교다.

신애가 그랬다. 마지막 희망까지 꺾여도 그는 신을 믿었다. 원수를 사랑하리라. 교도소에 면회를 간다. 너는 내가 용서하리라. 그럼으로 내가 위대한 신의 대리인임을 보여주리라. 그러나 아들을 죽인 그 살인자는 이미 용서를 받아버렸다. "하나님이 찾아와 죄 많은 놈에게 손을 내밀고 회개하고 용서해주셨죠."

그녀는 신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삿대질을 한다. 악행을 한 후 "잘 보이나요? 잘 보이냐고?"라며 파란 하늘을 보며 대든다. 이제 그녀는 용서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는 비밀스런 햇살에 고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인 노태맹은 '햇살에 고여 있다'는 시에서 '구원이란 묵언의 햇살로 터지는 울음'이라 적고 있다. 신애가 토해버리고 싶었던 것은 햇살이다. 그 속에 갇혀 울음조차 시원스럽게 터뜨릴 수 없는 절대 절망은 역설적이게도 햇살 때문에 나온 것이다.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연약한 여인을 두고 TV에서는 가벼운 농담이 난무하는 오락쇼가 왕왕거리고, 아이의 몸값을 들고 지시한 쓰레기통을 찾는 그녀 뒤로 택시기사들이 모여 카섹스의 말초적인 목격담을 주절거리고, 신을 믿고 밝은 햇살 속에서 구원받고 싶었지만, 결국은 햇살조차 그녀를 배신한 그 상대적 절망이다.

그래도 시인은 밝은 이미지로 햇살을 그려냈다. 그러나 세 단락의 결론에 해당되는 구절은 결정적이다. 신애의 힘든 삶과 사랑을 숨 겨운 그 은밀하고 빽빽한 이데올로기의 웅덩이로 그려내고 있다.

화가 권기철은 파란 하늘이 청명하던 영화의 첫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푸른 하늘은 희망이다. 밀양가기 5km 전. 그녀가 고장 난 차를 세워두고 본 하늘이다. 어느 시인은 '종교를 갖는 대신 나는 푸른 하늘을 보겠다'고 썼다. 그 시구를 파란 하늘에 적어 넣었다. 신에게도 귀의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신애의 마음처럼 말이다. 고장 난 차는 이미 그녀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하얀 구름이었지만, 작품 속에서는 노란 구름을 그려 넣었다. 오른쪽 구름에는 작은 핏자국이 뿌려졌다. 피어나지 못한 아들의 죽음이다. 노란 구름은 속 시원히 구원받을 수 없었던 신애의 타들어간 심정이고 화가는 노란 물감을 뿌려 이를 탄식하고 있다.

그 아래 나무도 아닌 어떤 것이 있다. 구부러진 십자가다. 슬픈 신애의 한 없이 절망스런 이미지가 회색빛에 잘 표현되고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울음이 원색의 밝음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이 신애의 시크릿 선샤인이고 밀양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밀양(2007)

감독:이창동

출연:전도연, 송강호

등급/상영시간:15세 관람가/141분

줄거리:밀양 외곽 5km, 고장 난 차가 서 있다. 남편과 사별한 신애(전도연)가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은 그녀를 밀양으로 데려간다. 피아니스트의 희망도, 남편에 대한 꿈마저 접어야 했던 그녀는 이 작은 도시에서 피아노학원을 열어 새로운 희망을 엮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들 준이 유괴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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