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슈퍼마켓, 구멍가게, 노점상…. 서민들의 삶은 언제나 팍팍하다. 그 와중에 대형소매점이 들어서면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작동되기 시작하고 일대는 초토화된다. 재래시장, 구멍가게 같은 경제적 약자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또다시 동구 율하택지지구에 큼직한 '공룡'(롯데쇼핑프라자)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서민 삶을 도외시하는 정책이다.
◆"도저히 살 수 없어요"=25일 오후 3시 수성구 수성시장. 문닫은 상점들이 더 많았다. 김순이(58·여)씨는 "10년 전만 해도 골목이 북적였는데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장사는 포기하고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 대형소매점이 생겼고 젊은층에서 시장을 찾지 않아 시장이 다 죽어간다"고 하소연했다. 수성시장은 재개발로 집이 뜯기면서 주민들이 대부분 이주해 고사위기에 놓여 있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동구 효목동 동구시장. 동구청이 지난 2년간 시설현대화 사업으로 20여억을 쏟아부어 아케이드 공사가 완료되고, 깔끔한 바닥에다 상점 진열대까지 정돈됐지만 손님은 드문드문 보였다. 한 상인은 "저쪽에 큰 마트가 생기고 나서 돈 쥐어본 지가 오래됐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곳에서 2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이동수(56)씨는 "겉모습은 나아졌는데 사람들이 주차시설이 없어 잘 찾지 않는다"며 "대형소매점과는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시장 안에는 임대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상인들은 10년 전만 해도 오전 6시면 문을 열었지만 요즘은 10시가 돼도 문 닫힌 점포가 많다고 했다. 오후 8시면 시장 인근은 적막강산이다. 대로변에서 채소를 파는 한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형소매점 봉지에 물건을 가득 담아 지나가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아느냐"며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불과 2㎞ 반경 내에 대형소매점이 두 곳이나 있는 수성구 시지~경산 지역. 아파트 상가의 슈퍼마켓을 빼고는 거리에는 구멍가게도, 슈퍼마켓도 없었다. H마트 주인(48·여)은 "눈 씻고 찾아봐도 슈퍼마켓을 개업하는 곳은 없다. 대형소매점이 이렇게 많은데 슈퍼마켓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26일 오후 반야월 종합시장, 목련시장 등 동구 율하택지지구 시장 상인들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실의에 빠져 있었다. 대구시가 인근에 초대형소매점을 허가할 것이란 얘기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명운동에 나서고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시가 도심 속 대형소매점 입점을 막겠다고 호언장담하고는 상인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시장 시설현대화는 왜 하나?=대구에는 대형소매점 18곳이 성업 중이다. 이 중 17곳이 외지업체며 단 1곳만이 지역업체다. 법인세는 국세이고, 고작 주민세 정도가 지방세로 거둬질 뿐이다.
대구경북통계청은 지난해 이들 대형소매점의 매출이 1조4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대형소매점의 대구 진출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재 대구의 대형소매점은 인구 14만2천명 당 1곳으로 다른 광역시에 비해 인구대비 대형소매점 개수가 다소 적다. 한 대형소매점 관계자는 "앞으로 대구를 공략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추가 진출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재래시장 현대화 무용론'까지 제기했다. 대형소매점 입점이 규제 없이 지속된다면 아무리 시장을 손질해도 '대형소매점에 중독된' 손님들의 발길을 돌리기는 역부족이다.
대구시는 지난 2002년부터 지역의 재래시장 30여곳에 772억6천여만원을 쏟아부어 공영주차장 및 아케이드 설치, 화장실 보수, 냉난방시설 구비 등 시설현대화사업을 벌였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시장 29곳을 대상으로 24억7천여만원을 들여 홈페이지 구축 등 시장경영혁신사업을 추진했으며, 올해에만 서문시장, 불로전통시장, 팔달신시장 등에 187억여원을 들여 시설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한 상인회장은 "대형소매점이 규제 없이 입점하면 재래시장에 아무리 퍼붓기를 해도 밑 빠진 독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입점한 대형소매점에 지역기여도를 높여달라고 요구해야 할 판에 또다시 신규 입점을 허가하는 것은 전체 상인들을 고사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대구시가 대형소매점 입점을 마구잡이로 허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래시장에 예산을 펑펑 쏟아붓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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