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에 대형소매점이 들어선지 11년이 지났다. 인근 상인들은 죽을 맛이라며 난리다. 대형소매점 1곳이 들어오면 재래시장 4곳과 중소유통업체 350곳의 매출액이 잠식당한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형소매점 진출에 대한 어떤 예측이나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신규 입점을 막겠다고 해놓고 최근 동구 율하택지지구에 신규 입점(롯데쇼핑프라자)을 허용할 계획이다.
시는 "법으로 막을수 없다"는 변명만 내놓고 있다. 원칙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행정의 전형이다.
◆예측 못한 대구시의 뒷북행정=2006년 12월 대구시는 대형소매점이 지역 유통시장을 잠식해나가자 '대형소매점 지역기여도 향상 및 신규진입 억제 추진계획'을 내놨다. 4차순환선 안에는 대형소매점 진입을 막고, 이미 입점한 곳에 대해선 지역기여도를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같은해 6월 김범일 대구시장도 한 인터뷰에서 "대형소매점의 인력 채용은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어서 고용효과가 미미하고, 지역에 본사나 법인을 두지 않아 지역자금의 역외유출까지 불러와 더이상 대형소매점 신설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까르푸를 인수한 홈에버는 북구 관음동, 서구 내당동, 동구 검사동에 보란듯이 재입점했다. 시는 "이미 진출했던 대형소매점을 다시 인수해 영업하는 것으로, 신규진입 억제 추진계획 대상자에서는 일종의 예외였다"고 말했다.
이후 시는 지난해 7월 도시계획조례를 개정, '대형소매점은 준주거지역에 들어올 수 없다'고 바꿨다. 이미 이마트 만촌·월배·반야월점, 홈에버 칠곡점 등 대형소매점 4곳이 도심속 준주거지역에서 성업 중이다.
게다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동구 율하동 율하택지지구 내 롯데쇼핑프라자는 용도지역이 상업지역인데다 4차순환선 밖에 위치해 입점이 확실시되고 있다. 결국 '도심속 대형소매점 불가방침'은 예외조항으로 인해 헛구호에 그치게 됐다. 시청 관계자는 "롯데쇼핑프라자가 청소용역, 주차관리 등을 지역업체에 맡기기로 약속했다"고 변명했다.
한 재래시장 상인회장은 "당초 대형소매점 하나가 얼마나 많은 교통유발을 일으키고, 서민경제에 해를 끼치는지 예측하고 방어했더라면 재래시장과 중소 유통업체를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구시의 적극적인 행정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시 관계자는 "신규진입 억제 계획을 수립한 뒤 입점을 원한 대형소매점 6곳에 대해 사업변경, 사업포기를 유도해왔다"며 "하지만 행정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뿐, 도심 속 상업지역에 신규 진출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대책을?=대전시는 지난 1월 재래시장, 중소 유통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 관리 5개년 계획'을 마련했다. 2012년까지 '매장면적이 3천㎡ 이상인 대형소매점, 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는 입점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았으며, '유통시설 총량제'까지 도입해 현재 영업중인 점포의 매장 확장도 제한했다. 광주, 청주, 제천, 강릉, 원주 등에서도 조례 개정 및 행정행위를 통해 대형소매점 입점을 적극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연면적 1만㎡ 이상 대형 상점의 신규 입점을 '상업지역'으로만 한정하는 '마치쓰쿠리(마을만들기) 3법'을 개정했다. 후쿠시마·구마모토·효고현 등 지방정부도 2005년 조례 개정을 통해 도심 속 대형 상점 출점을 규제하고 있다.
행정규제 못지않게 재래시장 상인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올초 부산 부전시장과 인근 농협하나로클럽 부전점은 '손님 뺏기'가 아닌 '손님 보내주기'를 통해 손을 잡았다. 농협은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할인쿠폰을 발행하고, 품목이 겹치는 신선식품 등은 할인행사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농협 전단에 부전시장을 홍보하는 문구도 삽입했다. 부전시장은 야시장을 열어 야밤에도 손님들이 하나로클럽을 찾도록 유도했다. '같이 죽자'가 아닌 '같이 살자'는 해법을 내놓은 것이다.
대구시 송영준 재래시장 담당은 "대구 114곳의 재래시장 중 불과 42곳만 상인회가 결성돼 있어 정부나 시 차원에서 지원을 하려해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인들이 힘을 합쳐 협력하지 않으면 재래시장 살리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재래시장 상품권이 유통가능한 곳도 59곳 정도다.
재래시장마다 가진 색깔과 특성을 살릴 필요성도 제기됐다.
북구 관문시장 하면 '생선', 팔달신시장은 '신선한 야채', 서문시장 '포목', 칠성시장 '과일' 등으로 대표 브랜드를 홍보하자는 것. 또 재래시장도 '폭탄세일'을 하고 공동배달제를 통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남신시장 허동구 상인회장은 "시장 자체에서도 주고객층이 누구며, 연령대나 구매 동선을 파악하고 여론조사를 하는 등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이동혁 경제정책팀장은 "대형소매점 규제를 위한 사전 심의제, 인근 재래시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제 등 입점 규제대책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성있고 구체적인 대안은 부족하다"며 "재래시장과 대형소매점이 공존공생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책을 하루빨리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 할인점의 지역기여도?
'10년 전에 비해 매출 740% 증가?'
대구 대형소매점의 유통시장 잠식은 숫자로 확연히 드러난다. 연도별 매출액 증가 추이는 놀랄 만하다.
1997년 대형소매점 2곳이 1천919억의 매출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01년 9곳이 1조757억원을 올려 처음으로 1조원대를 넘어섰다. 2002년부터 매년 1곳씩의 대형소매점이 들어서면서 2006년 모두 17곳이 1조5천억원대, 지난해 1조6천1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은 10년 전에 비해 740%, 5년 전보다 22% 늘었다.
지난 4월 1일 대구시는 대형소매점 점장들을 초청, 토론회를 갖고 지역기여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다. 대구시 이동혁 경제정책팀장은 "대형소매점 3곳에 지역 브랜드 '쉬메릭'이 입점했고, 지역민의 고용창출이나 지역금융 이용률도 점차 늘고 있다"며 "연중 2차례 추진실적을 점검하고 앞으로도 지역기여도 향상 사업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의 재래시장 및 중소유통업체는 고사 위기에 빠졌다. 2005년 대구 전체 1만7천983곳의 점포 중 빈 점포는 3천909곳(21.7%)이었고, 2006년에는 점포마저 줄어 1만6천271곳 중 3천726곳(22.9%)의 빈 점포가 발생했다(통계청 재래시장 실태 자료). 5곳 중 1곳은 폐업하거나 개점휴업 상태였다.
시는 ▷대형소매점 1곳이 입점하면 재래시장 4곳과 중소유통업체 350곳의 매출액이 잠식당하고 ▷대형소매점 1곳의 연평균매출액은 816억원이지만 재래시장 1곳은 19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유통시장은 대형소매점이 늘어나면 재래시장, 중소업체의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시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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