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변화한다는 것은 희망이다

봄날 천지 곳곳에 만개했던 꽃들이 잠깐 사이에 다 흩어져 내렸다. 모든 것은 한때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법이 없다. 변하고 지워지게 마련이다. 눈앞의 5월은 이름 붙여진 모든 것은 예외없이 변화한다는 이 무상의 이치를 불변의 진리로 깨닫게 한다. 잠깐 사이 꽃잎을 벗은 가지들이 다시 녹엽으로 변화하여 우리를 또 다른 일상으로 깨어나게 한다.

그러나 이제 곧 더위를 동반한 계절의 변화가 올 것이다. 봄햇살의 따스함도 푸른 5월도 한때의 시간이나 세월로 다시 변모될 것이다. 하기야 어디 그것이 하필 푸른 5월의 계절로만 한정되는가? 건강도 한때이고, 젊음도, 행'불행도, 부유하거나 가난함도 생각해보면 모두 한때일 뿐이다. 이렇듯 지나간다는 것은 변화이고 새로운 희망이다.

풍요를 따지자면 5월 우리들 산천의 푸른 정신이나 기상을 넘어설 주제가 흔치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푸른 기상과 정신의 풍요는 손에 잡히는 물질적 풍요로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이 문제이다. 정신은 생각이고 소중하여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반대로 물질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고 실제이다. 사실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질이 당장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생각 없이 눈앞의 물질에만 집착하면 변화가 주는 희망의 단서를 쉽게 놓치게 된다. 경계할 것은 편리해진 물질의 풍요가 아니다. 물질을 조종할 변화의 정신과 덕성이 물질에 자리를 내어주는 바로 그것이다. 소나무 같은 사철 푸름의 기상이 물질에 가려 피폐하게 되는 두려움이다.

생각을 돌이켜 보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거늘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가 있을까! 빈손을 채우겠다는 생각,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써야한다는 생각을 벗는 변화가 살맛나는 변화일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벌어들이는 수입 안에서 살면 된다. 할 수 있다면 버는 것보다 덜 쓰면 덜 쓰는 만큼은 더 풍요롭다. 우리들 삶 자체를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찬 물질도 반드시 고갈된다. 절약하면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조금 덜 지니고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더 넉넉하게 존재할 수 있음이다.

언젠가 미국 동북부 전체가 정전되는 큰 재난이 보도되었다. 그 재난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미덕이 되는 현대문명도 결국은 한때라는 사실을 실감케 하였다. 어딘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였을 때 그로부터 얻어지는 혜택과 안일함도 그에 비례한다. 그러나 크게 의존하였기 때문에 예고 없는 변화가 오면 감당해야 하는 비극의 몫이 그만큼 커진다. 우리가 겉모습인 신체 변화만 중요하게 여기고 정신의 영역을 간과하면 생각하고 해결할 일이 닥쳤을 때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경우를 겪게 된다. 정신 못 차리는 현상은 며칠이고 이어지는 대정전이라는 위급 사태가 주는 단절의 공포와 비슷하다.

정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잘 알고 보면 고통의 원인은 "이것 또한 변화할 것이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다. 그때문에 고통의 원인에 대한 가르침과 무상의 가르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유가상승 등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들 하는 오늘날 우리가 크게 각성할 일은 그동안 지켜왔던 소유와 소비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직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시간을 내어 생각하고 이를 알아보는 일이다.

5월 소나무같이 젊고 푸른 그대들이여!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라 하였던가? 푸르기만 하던 우리들 스승의 한마디 말씀이 가슴에 닿는다. 휴정 서산 대사께서 푸르디푸른 날을 나에게 가르치고 계신다. 즉, "수행자가 되는 것은 편하고 한가함을 구하거나,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어떤 직위나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다"는 말씀이다. 나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알고자 했을 때는 "선은 무엇이나 실천하고 악은 모두 끊어야하네." 그리고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의문에는 "그대 눈에 지금 보이는 바를 행하게." 하신다.

우리의 삶이란 말끝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서 행하고 있는 것임을 지적해 주신다. 이론이나 말은 그저 말일뿐, 살아 있는 기상이 될 수는 없다. 변화를 일깨우는 푸른 계절이다. 다른 사람들을 따지고 말하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먼저 다듬는 희망의 변화가 우리들의 젊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일진 스님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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