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엽기적 사건, 그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

미궁에 빠진 조선/유승희 지음/글항아리 펴냄

1488년(성종 19) 5월 20일. 왕십리 주변 개천에 여자의 시신이 떠올랐다. 1886년 도성 안에 콜레라가 창궐해 많은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지만 여자의 시체가 알몸으로 버려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여자의 시체는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참혹했다. 며칠을 물에 잠겨 있어 살이 퉁퉁 불어 있었고 입은 벌려지고 눈은 감겨 있었다. 외관상 구타당한 흔적이 뚜렷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여자의 음문(陰門)부터 항문까지 칼로 자른 것처럼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성종은 범행이 참혹해 풍속을 무너뜨릴 만하다며 철저히 조사할 것을 명했다.

한성부의 큰 집들을 탐문했으나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건 발생 17일째. 왕의 호위를 맡고 있는 내금위 이화의 집에서 여자 종이 행방불명됐다는 밀고가 들어왔다. 이화의 집을 수색하고 노비들을 추궁한 끝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시신은 갓스물 정도의 자색(姿色)이 있는 여종 동비였다. 이화는 동비를 간음한 후 계속해서 첩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 날 이화가 동비를 보러 그녀의 방을 찾았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종 내은금과 정을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동비는 나가달라며 뿌리쳤고, 이에 모욕감을 떨칠 수 없었던 이화는 동비를 끌어내 심하게 매질하고 살해한 것이다.

이로써 개천에 버려진 의문의 여자 살해사건은 주범 이화가 유배형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항간에는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이 시체가 동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신은 음문에서 항문까지 가지런히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화는 심문과정에서 "호미로 끌어당겨서 음문을 파열했다"고 진술했다. 또 동비가 매질로 한쪽 다리가 썩어 떨어져서 죽은 것으로 돼 있었지만, 시신은 두 다리가 멀쩡했다.

시신이 물에 뜬 시점과 동비가 살해된 시간대와 비슷했고, 살해 방법이 유사해 두 사건이 하나로 묶어져 처리된 것이라는 풍문이 떠돌았다. 이 사건은 당시 주인에 의한 종 살해가 얼마나 부지기수로 자행됐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일성록'의 범죄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18, 19세기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14가지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일성록'은 영조 36년(1760)부터 1910년까지 기록된 조정과 신하에 관련된 임금의 일기다. 한국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지만, 범죄 관련 부분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조사관이 범인과 나눈 일문일답, 증인들의 진술 등이 수록돼 있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좋은 사료다.

살인사건은 당시 사회를 투영하고 있다.

인간 내면의 의식세계뿐 아니라 구성원의 갈등과 긴장, 사회통제와 질서 등을 엿볼 수 있다. 18, 19세기 조선도 그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신분의 벽이 허물어지고 상업경제의 발달로 도시화 속에서 인구의 서울 집중, 술도가의 융성, 배금주의 풍토가 일어나고 있었다. 흐트러지는 유교질서를 잡으려는 강압적인 정책과 이에 맞서는 대중들의 움직임이 맞물려 무수한 갈등이 일어난 시대다.

이 책에 실린 14개의 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복수살인'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살해하고 창자를 꺼내 목에 두른 전라도 강진현의 복수극이 대표적이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내의 복수도 당시 투철한 종부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재산다툼의 와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도 많았다.

이외 정부가 백성에게 강제로 환곡을 환수하려다가 벌어진 살인사건, 아동 유괴 살인, 무덤과 음택풍수로 인한 살인사건, 음주로 인한 구타 살인, 과부보쌈의 유행과 그 사이에 벌어진 비극 등 다양한 조선의 사회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288쪽. 1만2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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