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Earl A. Grollman 지음/정경숙·신종섭 옮김/ 이너북스 펴냄

"엄마, 사람은 왜 죽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많은 부모들은 생명의 탄생에 관해서조차 말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 나는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으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라고 답했다.

요즘 많은 부모들은 생명의 탄생에 관한 한 정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삶의 끝,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 혹은 '거짓말'로 일관한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자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하다.

죽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실패하는 방식은 죽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정직하게. '떠나 버렸어' '깊은 잠에 빠진 거야' '멀리 여행 가신 거란다' 라는 모호한 대답은 바람직하지 않다.

얼버무리는 듯한 표현은 아이에게 죽음을 오해하게 한다. '여행'이라는 말을 쓸 경우 출장을 떠나는 부모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고 정직하게 표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따뜻하고, 동정적이며, 친절해야 한다. 아이가 지나친 두려움을 갖지 않으면서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는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더불어 부모가 죽음에 대해 모두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잘 전달할 수만 있다면 종교적 신념은 아이에게 안정과 이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세계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나 치장은 위험하다. 죽은 이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에 가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도 간혹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는 흔히 죽음을 '잠든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든 것'으로 설명할 경우에도 두 단어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잠자리에 대한 공포로 잠을 자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죽음은 먼 여행을 떠난 것이나 깊은 잠에 빠진 것이 결코 아님을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어른들보다 훨씬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네 방을 좀 봐라. 돼지우리도 이보다 낫겠다. 내가 일찍 죽으면, 너 때문인 줄 알아.'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럴 경우 아이는 심각한 죄책감에 빠져든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아이들은 죄책감을 흔히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징벌로 여기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를 속이거나, 동생을 괴롭힌 경우도 있고, 가족 중에 누가 오래 아팠다면 짜증을 낸 경우도 있고, 마음 속으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하고 생각한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부모들은 죄책감에 빠진 아이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네가 한 말이나 생각, 행동은 죽음과 상관이 없다. 네가 한 행동이나 생각이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생각이 사람을 죽게 만들지는 않는단다.' 라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의 실체에 대한 철학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어린이와 부모를 위한, 남은 자를 위한 책이다. 철학이나 종교,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이론에 근거하지만 내용은 매우 실체적이고 구체적이다.

책은 부모가 죽은 이의 이름을 넣어 아이에게 '이야기'처럼 읽어줄 수 있는 부분과 부모를 위한 별도의 지침서, 죽음을 다룬 추천도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매체와 기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와 함께 읽는 부분에는 적절한 그림을 넣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지은이 얼 그롤만은 국제적인 슬픔 카운슬러로 사별의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 저술가다. 그는 세계 각국의 학교, 전문 의료기관, 슬픔 위안단체 등을 통해 세미나를 주최하고 있다. 예시바 대학교로부터 '사별과 슬픔을 겪는 이에 대한 특별 봉사상'을 받았고, 하트랜드에서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140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죽음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십계명

첫째, 죽음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지 말라. 집이나 학교를 비롯한 어떤 모임에서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어떤 연령의 사람이든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할 수 있음을 부모가 이해해야 한다. 아이도 슬픔을 나눌 사람이다.

셋째,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분노, 슬픔, 울음' 등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자녀의 학교에 연락해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자녀가 겪고 있는 위기를 부모가 다루기 힘들다면 주위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아동 지도 클릭닉, 심리치료사, 성직자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여섯째, 아이에게 '네가 이 집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혹은 '네게 죽은 형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말라. '널 보면 누구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라는 말은 절대로 해서 안될 말이다.

일곱째, 죽음에 대한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동화나 이야기의 힘을 빌리지 마라. 언젠가는 부인해야 하는 허구나 혼란스러운 해석으로 진실을 가리면 안 된다. 특히 '네 아버지는 아주 먼 여행을 떠난 거야.'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다.

여덟째, 부모가 죽음에 대해 최종답안을 알고 있다고 믿게 하지 말라. 아이가 의심하거나 견해차를 드러낼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야 한다.

아홉째,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만약 부모가 감정을 억누른다면, 아이는 감정을 더욱 더 자제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슬픔이나 두려움을 숨기는 행위를 통해 부모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부모를 속이고 있다는 마음에서 또 한번 상처를 받는다.

열째, 자녀가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라.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듣는 것보다 말을 하는 것이다. 아이는 감정을 한없이 쏟아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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