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유일한 핏줄은 두달배기 아들…느옌 띠 빗씨

희망의 땅 한국이 절망의 늪 속으로…

▲ 현수(생후 2개월)가 엄마 느옌 띠 빗(23)씨 품에 안겨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직전까지 울던 울음을 그친 현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현수(생후 2개월)가 엄마 느옌 띠 빗(23)씨 품에 안겨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직전까지 울던 울음을 그친 현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한국 좋아요, 친구들이 한국 행복 많다 했어요. 지금 안 좋아요, 결혼 안 행복해요."

두달 된 아들 현수를 안은 베트남 출신 엄마 느옌 띠 빗(Nguyen Thi Bich·23)씨는 "한국이 어때요?"라는 말에 어눌한 한국말로 이렇게 답했다. 눈두덩은 붉었다. 2006년 9월 '가을의 신부'로 한국땅을 밟은 빗씨에게 한국은 더이상 축복과 행복의 땅이 아니다. 20개월 남짓한 한국생활은 그에게 악몽 자체. 2007년 10월 만삭의 몸으로 이혼녀가 됐다. 한국에 핏줄이라곤 뱃속의 아기, 현수가 유일했다.

빗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국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엄마의 손길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자지러지는 현수가 있기 때문이다.

빗씨와 현수의 보금자리는 영남대병원 4층 소아과 병실 한 귀퉁이 병상. 29일 오후 찾아간 가로 2.5m, 세로 1m 현수의 병상에는 손수건과 옷가지들이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그 옆에 어깨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가로 2m, 세로 50cm 짜리 보호자 침상이 빗씨의 안식처였다.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빗씨는 간호사들의 십시일반으로 끼니를 때운다. 베트남 며느리 빗씨를 돌보는 사람은 시부모가 아닌, 그의 이국생활을 연민하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인권상담소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빗씨의 한국말은 어눌했다. 취재진도 취재에 애를 먹어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힘겨웠을 한국생활이 짐작됐다. 빗씨는 한국말을 일부러 한달간 배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정작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이 돼야 할 남편이 지적장애 2급장애인이어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남편과 성관계를 거부하면 시부모에게 매질을 당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부모는 빗씨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감금된 채 살았다고 했다.

결국 결혼한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초여름 빗씨는 집을 나왔다. 시부모가 운영하는 모텔 2층인지, 자신이 살던 아파트 2층인지 잘 구별하지 못했지만 베란다를 통해 '탈출'했다고 했다. CCTV가 현관문에 하나, 현관 바깥 통로에 하나, 거실에 하나 있어서라고 했다. 임신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거뜬히 탈출했다는 빗씨. 하지만 빗씨가 집을 나와 대구이주여성인권상담소에 들른 첫날 우옥분 소장이 "임신가능성이 있으니 확인해 보자"고 했고 예상대로 빗씨는 현수를 가진 지 3개월째였다.

우여곡절 끝에 현수를 낳았지만 현수는 태어나서부터 한달 내내 울기만 했다. 어디가 아픈지 모르는 빗씨는 지난 19일에야 현수를 영남대병원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현수의 병명은 '담관협착의증', 담관협착이 의심되는 병으로 담즙(쓸개즙)이 지나가는 관이 좁아져 결국 고이게 되면서 몸 전체에 황달이 나타나는 증상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현수의 눈 흰자위가 풀빛을 띠고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오른쪽 발등에는 링거주사를 꽂고 입을 벌린 채 눈을 감고 있는 현수의 얼굴은 검고노란빛이었다. 의료진은 "현수가 갖고 있는 병은 아기들 사이에서 좀처럼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다"라며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5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빗씨는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서는 취재진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고맙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또렷한 발음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핏덩이에게 모정만은 너무나 또렷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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