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점심식사를 위해 대구 남구의 한식당을 찾은 직장인 최상진(35)씨는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서 재료의 원산지부터 살폈다. 메뉴판에는 원산지가 고스란히 표시돼 있었다. 육회의 원산지는 육우용 한우, 밥은 국산 80%, 중국산 20%가 섞였다.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는 국내에서 키운 배추로 버무려졌다. 최씨가 이처럼 음식물의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있는 것은 '원산지 의무표시제' 덕분이다.
과연 1년 뒤 식당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앞두고 원산지 표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먹을거리 안전망 탄탄
올해 중 쇠고기와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 의무제'가 소규모 음식점에까지 확대된다. 현재 300㎡의 대형 한우취급 음식점에서만 시행하고 있지만 당장 6월 22일부터는 100㎡ 이상 규모의 음식점들도 손님 식탁에 올리는 밥쌀과 쇠고기의 원산지를 표기해야 한다. 12월 22일부터 닭고기, 돼지고기, 김치류에도 원(原)생산지를 알려야 한다.
제도가 정착되면 소비자들의 먹을거리 안전망이 더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혀끝과 입소문으로 퍼졌던 식당들의 평가는 재료의 국적과 혼합비율 등이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짐으로써 그 우열이 새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성구의 C한우전문점 관계자는 "원산지 표시제가 정착하면 외국산을 속여 판다는 소비자의 의심을 피할 수 있어 식당주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가 쌓일 것"이라고 했다.
◆음식점은 걱정 태산
그러나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다. 식당 업주들은 "원산지 표시 단속이 식당에 집중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걱정이다. 6월부터 밥쌀의 원산지 표시제가 의무화되지만 식당 업주들은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기자가 북구지역 음식점 10곳에 들어가 '원산지 표시제'와 관련한 식품위생법 개정에 대해 물었더니 "알고 있다"거나 "들은 적 있다"는 곳은 2곳에 불과했다. 북구 노원동 J한식점 업주는 "10가지 반찬을 내놓는데 모두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식당 업주들은 '쌀의 비율을 저울로 재 한치의 오차도 없이 표기해야 하나' '메뉴판을 모두 바꿔야 하는가' '김치의 경우 배추는 국산이고 양념은 중국산이면 어떻게 하느냐' 등 갖가지 불만을 쏟아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변정열 지도과장은 "식품이력추적제 등 생산자와 유통업자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를 확인할 수 없는 식당들만 피해자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혼란 불 보듯
"식당업주의 양심에 맡겨야 하나요?"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되면 소비자들로서는 식당 메뉴판을 믿고 먹는 수밖에 없다. 박수진 대구소비자연맹 정보팀장은 "소비자들이 쉽게 보고 진품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쇠고기 '추적이력시스템'이 좋은 예다. 일부 쇠고기 판매점은 출산에서 사육, 도축까지 전 과정을 시스템화해 고기의 이력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소비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지만 식당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다보니 선뜻 도입하기는 쉽잖다.
다른 먹을거리로 확대될지도 의문이다. 식당에서 판매한 밥, 김치류 등이 원산지 허위 표시로 드러났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도 과제다.
한 구청 식품위생과 직원은 "원산지 표기를 어긴 업소를 적발하더라도 생산자, 유통업자, 식당 중에 누가 속였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며 "식당업주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준수사항과 단속 매뉴얼이 없어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은 30일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대구시·경북도, 생산·소비자단체 대표 등 150명으로 합동단속반을 편성해 육류 원산지표시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인다. 합동단속반은 모든 식육점과 면적 300㎡ 이상의 음식점을 대상으로 원산지 표시준수 여부와 둔갑판매 등 부정유통사례에 대한 단속을 벌일 계획이다. 오는 6월 말부터는 100㎡ 이상 면적의 음식점까지 대상을 확대해 연중 단속을 실시하기로 했다.
농관원 관계자는 "쇠고기 등의 부정유통 사례가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DNA 분석 등 과학적 식별방법을 모두 동원하고 위반자는 형사고발 등 행정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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