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중국 인터넷 게시판에서 '일본'한국제품 불매 운동'이 거셌다.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불매 운동을 조장하는 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왕천애라는 청년이 크게 주목받았는데 네티즌들은 그를 '憤靑(분청)'이라고 불렀다. 이후 분청은 외국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앞세워 중국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청년을 대변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분청의 배경에는 1990년대 중국 청년들을 열광케 한 왕소동(王小東)과 하신(何新)이라는 인물이 도사리고 있다. 젊은이들이 '애국적 민족주의' 기수로 떠받든 이데올로그들이다. "모택동 사상과 비견할 만하다"고 추앙받는 왕소동의 공식 직함은 중국청소년연구센터 연구원. 그는 "중국은 13억이 먹고살기에 생존 공간이 너무 좁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통해 생존 공간을 쟁취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자유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비 확충이 더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닌다. 중국 전역을 돌며 중고생들을 이런 빗나간 민족주의로 세뇌하고 있으니 중국이 나아갈 좌표가 어딜지는 뻔하다.
왕소동이 인터넷을 달군 스타 이론가라면 하신은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비호로 신국가주의를 주창해온 이론가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현재 정협(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특급대우를 받고 있다는 그는 "국가 형태가 어떻든 인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1990년 북경대 연설로 '하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슬로건인 '조화(和諧)사회'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왕소동도 하신도 결국 중국 공산당의 통치 기반을 다져주는 왜곡된 애국 이데올로기의 선전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 유학생들의 서울 성화 폭력사태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도 분청의 그림자다. 중국 외교부가 '성화 방해에 분노한 선량한 대학생들'이라고 변명하지만 분청의 정체와 본질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소리다. 중국인들이 '굴기'를 외치고 신중화주의를 염원하면 할수록 중국의 품격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미래는 어둡다. 이성을 잃은 중국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중국이 '제2의 문화대혁명'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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