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연풍(時和年豊)이란 말을 기억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해 12월 말 2008년 새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선정해 발표하였던 것입니다.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의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고 합니다만, 요즈음으로 치면 당시의 국정목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화연풍과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가 여럿 있습니다만, 1천200여년 전 통일신라 때에 쓰여진 예가 하나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명문의 한 구절인 시태국평(時泰國平)입니다. '시절은 태평하고 나라는 평안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시화연풍의 오랜 선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속칭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771년 성덕대왕을 위해 주조한 종입니다. 견줄 데 없는 크기와 우아한 형태, 보상화 연꽃 비천 등 아름다운 무늬와 조각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장엄, 독창적인 음관과 웅혼하고 장중한 소리, 필연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주조기술 등이 이 신종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입니다. 이처럼 신라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종을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삼보(三寶)로 부르자고 제창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종은 이러한 미술사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국문학사상에서도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종 표면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1천여자가 넘는 명문의 존재 때문입니다. 육두품인 김필오(또는 김필해)가 지은 이 글은 우리나라 종에 새겨진 명문의 효시이기도 합니다. 조동일 교수는 신종의 명문이 내용에서나 표현에서나 으뜸가는 문학작품으로서 통일신라 전성기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명문 내용 일부를 옮겨봅니다.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인 종소리를 듣고 깨닫게 한다는 구절이 첫머리에 나옵니다.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풍속을 어루만지고 예절과 음악을 받들고 근본이 되는 농사에 힘썼다고 성덕대왕을 칭송합니다. 형상은 산이 우뚝 솟은 듯하고 소리는 용이 읊조리는 듯하다며 신종을 묘사해 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삼국 통일을 이룬(合爲一鄕) 신라를 예찬하기도 하며 시태국평한 나라와 영원히 큰 복이 이루어지길 빌며 끝을 맺습니다.
각설하고, 우리나라가 시태국평하고 합위일향으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사족입니다만, 이 신종 명문의 전문을 보셨습니까. 부끄럽게도 저는 작년에야 비로소 읽어 보았습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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