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얻은 주형이는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입니다. 세상에 살붙이 간 사랑 만큼 소중한 게 어디 또 있겠어요." 주물금속업체와 요식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사업가 이광해(55)씨에게 늦둥이 아들인 주형(10)은 세상을 향한 새로운 자신감과 삶의 행복을 안겨다 준 최고의 복덩이다.
20대부터 사업의 길에 나선 이씨는 건설업과 유통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았다. 그러면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던 터라 이씨에게는 주변 지인들이 상당히 많았고 이들이 어려울 때면 금전적인 도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잘 나가던 사업이 IMF를 맞으면서 타격을 받았죠. 그래서 다른 사업을 구상하면서 주변에 깔렸던 돈을 회수하려는데 갑자기 자금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씨는 이때 상당한 재산을 날려버렸다. 평소 부탁하면 잘 거절하지 못하고, 없으면 남에게 빌려서라도 도움을 줬던 그이지만 "그때부터는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40대 중반에 맞은 위기. 이씨는 실의에 빠져 낚시와 운동으로 세월을 보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점차 늘어만 갔다. 그러다가 피곤하면 그냥 잠에 빠져 들었다.
그때 이를 보다 못한 부인이 제안을 했다. 늦둥이 하나를 낳자고. 이미 장성한 두 딸이 있는데…. 그리고 그의 나이 45살에 생각지도 못한 주형이가 태어났다.
"처음 아이를 가지려고 할 땐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집사람의 건강도 염려가 됐고요."
하지만 정작 태어난 막내아들을 보자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하늘은 천 가지 만 가지 복을 다 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날린 재산 대신 주형이가 내게 왔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까짓것 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씨는 힘이 불끈 솟았다. 작고한 형의 주물회사를 인수하고 요식업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주형의 어린시절 앙증맞은 모습을 찍은 작은 사진첩을 늘 안주머니에 지니고 다닌다. 두 누나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내보낸 어린이 모델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주형이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주형은 아버지의 예능적 기질을 이어받아 초교 입학 전까지 4년간 어린이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주형이 덕분에 제 가족은 새로운 애정과 행복의 샘이 솟게 됐습니다. 대화의 시간도 더욱 풍성해 졌고요."
그전엔 사업이 바빠 늦은 귀가가 잦아 가족간 대화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이 덤덤한 사이였으나 손자 같은 아들(?)을 보면서 살가운 말이라도 한 마디 더 하게 됐다는 것. 무뚝뚝했던 경상도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아빠로 변한 게 스스로도 놀랍다고 했다.
요즘 그는 주형이의 등하교 길을 직접 챙긴다. 무조건적인 재산 상속은 오히려 자식을 망칠수도 있다. 다만 스스로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데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에게 있어 아들은 일상의 활력소이자 즐거움이다. 휴일이면 부자간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한다.
외국과 타지에서 유학중인 두딸(27세, 24세) 딸도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하면서 터울 많은 동생의 안부를 곧잘 챙긴다. 이씨는 그런 딸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가장으로서 한때 힘겨운 시절이 있었죠. 그때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 혼자라면 차라리 홀가분 했을텐데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는 게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건 한 때의 착각이었고 가족이 있었기에 다시 설 수 있었습니다."
아들과 아내, 두 딸이 있어 이젠 하루하루가 행복한 것이 너무 고맙다는 이씨는 최근 주변에서 젊은 나이에 이혼하는 가정해체 현상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살았던 날보다 살 날이 더 많고, 곁에서 응원하는 피붙이들이 있는 한 얼마든지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것이 참된 가족의 힘이 아닐까요."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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