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주변으로 접어들었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내달리던 두 눈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한 여자아이에게 멈춰 섰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일, 이학년 정도 될 듯한 아이는 누군가가 건드리면 이내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불안한 얼굴로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한 일행의 손을 놓치고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동물적 감각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얼마를 지켜보았을까. 열두 치마폭보다 너른 나의 오지랖이 가만있을 리 없다. 도와줄 심산으로 기어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를 잃어 버렸나 보구나'로 시작된 나의 말 걸기에 아이는 대꾸는커녕 불에 데인 듯 움찔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선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엄마찾기를 도와달라고 말하자. 아줌마가 도와줄게. 일방적인 독백으로 아이를 향한 구애는 계속되었지만 오히려 아이는 두려움에다가 의심의 눈초리를 얹어가며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심지어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는 듯이 경계의 끈을 더 조이는 듯하다.
그제서야 사태를 간파한 나는 객쩍은 모양새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곱지 않은 시선이 뒷 목덜미에 따라 붙는 듯하다. 기실 최근의 유쾌하지 못한 사건들로 인하여 철저한 교육이 있었던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의 친절을 경계하라고 했을 테다. 아무도 믿지 말고 따라가지도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위기상황을 대비해 적절하게 잘 가르쳤다고 애써 위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다 이렇게 메마르고 푸석한 지경까지 이르렀나 싶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맑은 동심조차 멍들게 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타인의 호의조차도 일단은 검증부터 하라고 가르치는 사회, 마치 '不信(불신) 권하는 사회' 같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유 없는 폭력으로 신음하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바야흐로 농익은 봄, 5월이다. 미래 사회의 주역들을 위한 진정한 선물은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겨우내 움츠렸던 초록이 대지를 향해 속살을 밀어내고, 부지런한 민들레도 제 살갗 실어 보낼 씨 풍선 불기가 한창이다. 5월의 눈부신 햇살처럼 따습고 사람 냄새나는 인간세상을 후세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올곧은 자연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김향숙(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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