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전시가 성시를 이루는 달이다. 좋은 전시라면 놓치고 싶지 않고 서울 걸음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은 이번에 서울 사간동 쪽을 한번 들러볼 만하다. 최근 사간동 일원에서는 기존 화랑들이 신관을 새로 짓고, 신설 화랑들의 개관도 늘어나 괄목할 만한 관람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경복궁 동편 담을 따라 삼청동 쪽으로 걷다보면 금호, 현대, 국제 등 이름 있는 화랑들이 늘어서있고, 그 중간에 있는 '학고재 서울'에서 동덕여고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골목 안에 '아트 선재'와 '아라리오 서울' 등이 인접해 있어서 한걸음에 일대를 다 돌아보게 된다. 전시 공간들도 괜찮을 뿐 아니라 전시 내용들도 수준급들이다.
특히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젤름 키퍼'전은 국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전시회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포스트모던한 분위기의 회화와 웅대한 규모의 설치 작품을 제작하며 그 명성을 아는 이들에게서는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키퍼는 1980년대 출현한 독일 신표현주의 중심 작가다. 유럽 전후미술이 앵포르멜 양식에서 점차 미국의 추상과 팝아트, 개념미술의 영향과 함께 회화적인 가치들을 포기해갈 때 다시금 형상이 있는 그림으로 복귀하여 역사나 신화, 개인의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그리기 시작한 세대이다. 당시 독일의 키퍼를 비롯한 신표현주의자들은 시각적 형식에서는 물론 내용 면에서도 주제가 강렬한 센세이셔널 한 회화를 그려냈다. 타임지에 미술평을 쓰던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키퍼를 두고 '미국에는 없는 유럽의 작가'란 말로 그를 특징지었다. 우리 현대미술도 유럽보다는 미국미술의 모습을 더 좇아가 현실이나 사회적 삶의 성찰과 무관한 형식주의가 두드러졌는데, 당연히 우리에게도 없는 이례적인 작가이다.
그는 납을 재료로 책이나 팔레트, 날개, 비행기 같은 모티프들을 만든다. 납은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황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기본 물질로서 은유하는 바가 매우 크다. 비천한 금속이면서 무겁고 쉽게 늘어나며 그 빛깔은 우울하다. 또 치명적인 독성을 가졌으며 부식이나 방사능 같은 위해에 대해서는 강한 내성과 차폐성을 지녔다. 재료가 지닌 이런 상징성과 형상들의 상징을 역설적으로 결합시켜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의미의 알레고리를 만들어낸다. 그 내용들은 대개 우리를 문명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어간다. 특히 독일에서는 금기시되던 나치의 과거 전력을 성찰하고 전쟁과 파괴의 상흔 위에 숭고의 풍경을 구축하는 그의 초기 회화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녔다. 보면 누구나 전율을 느낄 만한 그런 그림들이 아직 국내에 소개된 바 없어 아쉽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 수도 많이는 기대할 순 없다. 워낙 규모가 크고 취급이 용이하지 않는 작품이 많은 작가다. 갤러리의 입장료나 관람료는 따로 없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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