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거죠."
변호사 1만명 시대가 열렸다. 변호사 사회에도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정글법칙이 위력을 더해갈 게 분명하다. 변호사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사회 전반의 불황과 제한된 시장규모는 너나 할 것 없이 변호사들의 호주머니를 가볍게 만들고 있다.
◆변호사 무한경쟁 돌입
지난달 전국의 등록 변호사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 1906년 변호사제도가 생긴 이후 102년 만이다. 2002년 5천명을 넘은 변호사 수가 불과 6년 만에 2배로 불어난 것. 대구의 경우 4월 말 현재 협회 가입 변호사는 339명. 2004년 300명을 넘었으니 증가세는 둔한 편이지만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변호사 1명 느는 영향이 적잖아 대구도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지역 변호사들 중 서울, 부산 등지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타지역에서 개업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정된 시장에 변호사 수가 늘다 보니 업계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우선 사무실 운영 경비를 줄이기 위해 공동 사무실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합동법률사무소가 28개, 법무법인이 17개나 된다. 공기업이나 정부기관으로 발길을 돌린 변호사들도 늘고 있는 추세지만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이 많지 않아 이마저도 쉽잖다. 등기, 개인파산 등 예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일도 가리지 않는다. 한 변호사는 "개인파산 업무를 해볼까라는 말을 꺼냈다가 후배 변호사에게 밥그릇 빼앗지 말라며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2001년 사법시험 문호 확대와 함께 매년 600~700명의 변호사가 쏟아지지만, 지역의 변호사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 이유는 '수임료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데다 경기 악화로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인 것으로 변호사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권준호 대구변협 홍보이사는 "지역 법조시장 규모가 연간 500억원 정도로 파악될 만큼 열악해 1년에 1억원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변호사 수가 많아도 결국 '돈'이 몰리는 곳으로 향하게 돼 돈 없고 권력이 없는 수요자들의 접근이 어려워질 우려가 발생한다"고 했다.
◆1만 시대 자화상
선망의 대상이던 변호사, 그러나 정작 변호사들은 '빛좋은 개살구'도 안 된다고 말한다. A변호사는 얼마 전 점심시간에 개업한 후배 변호사를 만났는데 "이번 달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직원들 월급을 줬지만, 조만간 결단(폐업)을 내려야겠습니다"라는 탄식을 들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와 몇년간 법무법인에서 경력을 쌓은 뒤, 여기저기서 돈을 그러모아 어렵사리 사무실을 차린 후배에게 A변호사는 아무말도 못해줬다고 했다. 자신도 겨우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힘내라'는 위로도 건네기 쉽잖았다는 것이다.
법원 주변인 수성구 범어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달에 대략 1천만 원. "수임료가 보통 200만~3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한달에 5건은 해야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데, 변호사의 한달 평균 수임건수는 4건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죠."
B변호사는 최근 4명의 직원을 2명으로 줄이고 '3인 체제'로 들어갔다. 경비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대구의 개업 변호사 경우 5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보통인데 경영악화로 슬림화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한 변호사는 "사건을 떼오던 국장을 없애고, 법정에 출석만 하던 변호사들이 직접 수임하러 뛰어다니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C변호사는 법무법인 고용변호사의 경우 10년 새 월급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그는 "경력이 미약할 경우 세금을 떼기 전 월급이 400만원 정도에 그친다"고 귀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의 시선도 달려졌다. '돈 못 버는 변호사보다 공무원이 낫다'는 것. D변호사는 최근 피의자를 접견하러 교도소(포항)에 갔다가 속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교도관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교도관을 선택했는데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 것. "변호사 된 친구들 보니 현상유지도 못하는데 꼬박꼬박 월급 나오고, 퇴직 후에는 연금까지 나오니 변호사보다 훨씬 낫잖아요." D변호사는 "변호사 1만명 시대의 자화상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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