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K(12)양은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 안절부절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데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기만 해도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기 일쑤다. 한 성폭력피해아동상담기관에서 받는 미술치료에서는 찰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든 뒤 포크로 끊임없이 찔러대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자신과 가해자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라는 것이 치료진의 설명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들의 후유증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어떤 일을 당했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못하면서도 막연히 '나쁜 일을 당했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상당수다.
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형성될 무렵이면 반응은 훨씬 복잡해진다. 유림미술치료상담소 박혜경 소장은 "가해자에 대한 적대감에서부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도 본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특징적인 양상이 보고되지는 않지만 크레파스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두 뒤덮어버리는 등의 행동으로 분노와 불안을 표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런 아이들의 행동에 부모 역시 당황스럽고 정신적 충격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최태진 신경정신과 원장은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거나,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때문에 피해 아동뿐 아니라 부모 역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부모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발언을 하거나, 과도하게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아이는 한번 더 상처를 입게 된다.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성인이 돼서도 고통을 받기도 한다. 결혼을 거부하거나,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과의 성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이성애적 성향을 가졌음에도 '동성애자'로 행동하는 경우까지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것.
한 전문가는 "최소한 5개월 이상의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후유증이 성인이 돼서 어떤 형태로 표출될지 모른다는 데 아동 성폭력 피해의 무서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윤조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