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의 성장사를 그리고 있는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는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의 부제처럼 '온전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는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집을 나와 탄광촌에서 아들과 단둘이 산다. 함께 살지 않는 아빠는 '때때로 아빠'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도쿄타워'를 읽다 보면 온전하지 못한 세 가족이 살아가는 법이 자못 감동적이다. 각자 거친 세파를 살아가면서도 서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몇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을 훔치게 한다. 먼저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그날 아침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김으로 싼 주먹밥을 여행가방에 담아 처음으로 엄마 품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아들에게 건네준다. 기차를 타고 가던 아들이 가방을 열자 도시락 밑에는 엄마가 쓴 편지가 있었다. "네가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정말 기뻤다. 엄니 일을 걱정하지 말고 몸 건강하게 열심히 공부해라." 아들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편지를 읽다 그만 목이 메고 만다.
늘 공부가 뒷전인 아들은 엄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인다. 대학도 중퇴하려다 엄마의 강권에 마지못해 겨우 졸업을 한다. 엄마는 언제나 그런 철없는 아들을 믿고 응원한다. '때때로 아버지'도 이따금씩 아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멘토링이 좀 짓궂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 거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우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때 아버지는 뜻밖에도 "네가 정한 대로 하라"며 백수가 되겠다는 아들을 전폭 지지한다.
"그림을 그리건 아무것도 안 하건, 어떤 일에나 최소 5년은 걸리는 거여. 일단 시작하면 5년은 계속해.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면 최소 5년은 아무것도 안 하도록 해봐. 그것도 힘든 일이여. 도중에 역시 그때 취직했더라면 좋았다느니 어쩌느니 했다가는 너는 백수건달로서의 재능도 없는 거여."
그야말로 '백수의 철학'이다. 이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참 철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백수를 5년 동안 하다 보면 일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세상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약이 잔뜩 오르게 되면 비로소 일을 해야겠다는 자세가 나올 수 있다. 삶의 치열성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세상의 이치를 멘토링해준 것일 게다. 아들은 백수로 지내다 결국 프리랜서로 성공한다. 우리나라의 청년 백수들도 여기서 일말의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직업을 갖게 되자 아들은 시골에서 음식장사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함께 살자고 한다. 도쿄에 온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고개를 숙이며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내리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돈을 타 쓰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인데도 함께 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이다.
아들은 15년 만에 어머니가 지어주는 밥을 다시 먹게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들이 오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준다. 집에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려고 친구들로 북적인다. 그 행복도 잠시, 어머니는 암이 재발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은 엄마가 죽은 후 개봉해보라는 상자를 아들이 열 때다. 상자에는 꽃 같은 엄마가 갓난 아들을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만큼 행복한 여인이 또 있을까.
이 소설을 읽고 아내에게 일독을 권했다. 그리고 최근 아내와 아들과 함께 영화로 만들어진 '도쿄타워'를 보았다. 그 다음날 아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처가에 전화를 했다. 장모가 요즘 자주 호흡곤란을 겪는다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전화로 이 사실을 재차 확인한 아내는 곧바로 대학병원에 장모를 모시고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맥박이 30까지 떨어져 자칫 맥박이 꺼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결국 장모님은 심장에 맥박을 정상상태로 유지해주는 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했다. '도쿄타워'가 장모님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도쿄타워'는 온전하지 못한 가정이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물며 온전한 가정이라면 이들보다 더 감동적으로 사는 법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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