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교육 제대로 하자](상)유치한 학교 성교육

지난달 21일 발생한 대구 초교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아이들의 비뚤어진 성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음란물에 무제한 노출된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학교, 가정은 형식적인 성교육에 머물러왔다. 성교육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현재의 교육환경이나 시스템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성교육은 유치원 수준

"성교육 시간이요? 유치한 비디오만 틀어주던데요."

초교 6학년 오모(12)군은 최근 학교 수업시간때 들었던 성교육이 너무 지루했다. 같은 반 급우들과 잔뜩 기대했지만, 정작 보건교사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서 임신이 되고, 세포분열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따위의 뻔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오 군은 "비디오 내용이 작년에 봤던 것과 비슷해 하품만 났다"며 "솔직히 한밤중에 케이블TV를 켜보면 야한 영화나 드라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수준(?)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왜곡된 성의식을 초래하는 음란물이 초교생조차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범람하고 있으나, 초·중·고교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유치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 강의 비디오를 보여주거나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정도에 그치고 성교육 시간도 턱없이 모자란다며 교사들조차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사)보건교육포럼이 지난달 28일 초등생 1천265명을 포함, 전국 초·중·고교생 3천710명에 대해 성의식 실태를 조사해본 결과 지금까지 학생들은 형식적인 성교육을 받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가정통신문 등 인쇄물로 성교육을 받는다'(15.0%), '강당에서 모여 한꺼번에 성교육을 받는다'(12.5%)고 응답했다. 성교육 빈도도 초교 6학년에 높아지다가 이후 계속 줄어 고등학교에서는 성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상당수였다. 교실에서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는다고 답한 경우는 21.2%에 그쳤고, 성교육 수업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도 16.5%나 됐다.

◆부실한 학교 성교육

성교육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정부는 학교마다 성희롱, 성매매, 양성 평등을 주제로 1년에 최소 3시간의 수업을 의무적으로 실시토록 하고 있으며, 연간 10시간의 성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보건교과는 정규과목이 아니어서 권장 시간을 채우기 위해 교내 방송 수업이나 강당 교육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학교당 보건교사 1명으로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기 불가능하고 1대1 상담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건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게 교사들의 불만이다.

보건교육포럼 관계자는 "학교에 따라 성교육이 들쭉날쭉한다. 학기당 130시간을 할애해 성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는 반면 상당수 학교는 단 1시간도 성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성교육이 정규 교과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이란 게 없고, 학년이 올라가도 매번 같은 내용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도 따분한 시간으로 여기기 일쑤"라고 말했다. 성추행·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역할극' 등 참신한 수업을 진행하는 일부 학교도 있지만 대다수 학교는 준비의 어려움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범죄 전문가인 김수진 변호사는 "현재 성교육은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개선책이 시급하다"며 "어린이들이 자주 접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음란물 규제도 엄격히 적용해야 하고 학교에서 이런 음란물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자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부설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장은 "이제는 정말 단순히 생물학적인 성지식을 가르치는 데서 벗어나 성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르게 세우는 데 주력해야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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