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옥 앞을 지나 유턴을 합니다. 유턴 직후 횡단보도와 마주치는데, 적지 않은 보행자들이 아예 도로 위에 내려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이 출발 선상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단거리 주자 같습니다. 뼛속 깊이 스며든 조급증과 '빨리빨리' 증후군을 이 도시의 횡단보도 풍경에서 발견합니다.
질문 하나 던져 봅니다. 횡단보도는 차도일까요, 인도일까요. 도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발상을 전환해 봅시다. 횡단보도는 원래는 인도인데 차도로 빌려 쓰는 것이라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누구나 보행자가 됩니다. 너무나도 명확한 이 명제를 우리는 곧잘 잊어버립니다. 운전자에게 보행자는 차량 흐름에 성가신 존재이고, 큰 차 운전자에게 작은 차는 무시 대상입니다.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의 운전이 전쟁 같다고 하더군요. 차로를 바꾸려고 깜빡이를 넣었더니, 옆 차로에서 멀찌감치 뒤에 오던 차가 가속페달을 냅다 밟아 따라붙는 바람에 기겁했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성폭력범죄 처벌강화 및 피해자 보호법' 명칭에 혜진·예슬양의 이름 사용을 추진했습니다. 법 취지는 이해되지만, 그 발상에서 혜진·예슬양 부모가 겪을 수 있는 고통에 대한 무감각함과 잔인함을 보았습니다. 혜진·예슬양의 이름을 넣지 않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결정 같습니다.
13년 전 대구상인동가스폭발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로부터 들은 말이 기억납니다. "아이 묘를 만들었는데 괜히 그랬다 싶어요. 나와 아내가 죽고 나면 아이 무덤은 누가 돌볼까 걱정이에요. 위령탑 만든 것도 반대할 걸 그랬습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실로 많은 정책들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습니다.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혁신도시, 미국소 수입 논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존폐 논란 등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네 삶, 미래와 밀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론의 애드벌룬을 띄워보려는 듯 어떤 것은 발표됐다가 며칠 만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도 많습니다. 그 정책들이 손바닥 뒤집듯 거론됐다 철회했다 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을 졸입니다.
정부는 국회 반대로 무산된 추경예산안을 재추진하고,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해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속내를 거듭 드러내보이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안이 복지보다 성장에 맞춰져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5% 성장해 봐야 물가가 5% 오르면 서민들로서는 '말짱 도루묵'입니다.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게 돌아가지만, 물가 상승의 고통은 서민들이 온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관용을 망각한 듯합니다. 약육강식의 경쟁만 보이고 공존의 미덕과 효율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잔인한 사회, 이것이 우리가 꿈꿔오던 대한민국은 결코 아닐 겁니다.
김해용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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