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성과 열정으로 뜨거운 무대" 뮤지컬 배우 최정원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은 언제나처럼"

뮤지컬 배우 최정원(39)과의 인터뷰는 한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표정은 풍부했고, 간간이 노래가 터져나왔으며 손짓은 너울댔다. 1시간 동안 이어진 맛깔스러운 공연.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호암아트홀 로비에서 진행됐다. 그녀는 달변이었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이 없었고, 또박또박 얘기를 풀어갔다. 미소를 잃지 않았다. 20년간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서 있던 탓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배우' 최정원과 '인간' 최정원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그녀는 말했다. 인터뷰는 배우로서의 가면과 진짜 자신의 내면의 중간 정도인 것 같다고.

◆나는야 천생 뮤지컬 배우

-지금 자동차 오디오에 꽂혀있는 CD가 뭔가요?

"'위키드(Wicked)'라는 뮤지컬 CD예요. 뮤지컬 배우다 보니 뮤지컬 넘버를 많이 듣고요. 재즈를 되게 좋아해요. 특히 쳇 베이커라는 트럼펫 연주자를 너무 좋아해요.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는 편이에요. 특히 여름에 창문을 열고 '뉴욕 뉴욕~♬'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옆 차 운전자가 박수도 쳐주시고."

-음악을 들을 때 여러곡들을 두루 듣는 편이세요? 아니면 마음에 드는 한두곡을 집중적으로 듣는 편이세요?

"한곡을 반복해서요. 여러번. 완전히 머리에 들어올 때까지요. 제 공연이나 연습 스타일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연습벌레입니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해서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만들죠.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 박수는 정말 달아요.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연습이라는 쓴맛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목소리를 확인한다면서요?

습관이에요. 남편이 그러는데 새벽이면 제가 일어나서 '음~음~ 모든 걸~♬ 나온다' 이렇게 목을 풀고 잔대요. 저는 다른 사람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안 그렇다더군요. 제가 좀 그런 욕심과 집착이 많은 것 같아요. 항상 준비돼 있지 않으면 불안한 거. 지금 제가 커피를 전혀 입에 못 대요.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커피가 되게 목에 안 좋다' 이런 얘기를 들었나봐요. 그 다음부터 '나는 커피를 안 먹는 사람이야' 이렇게 된 거예요. 조금 향기를 맡아도 막 떨려요."

◆수천번 연습한 대사 한 마디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고교 2학년 때 '주말의 명화'에서 진 캐리가 주연한 '싱잉 인 더 레인'을 봤어요. 주인공이 "아임 싱잉 인 더레인, 져스트 싱잉 인 더 레인~♬' 하고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잖아요. 소름이 끼치고 어휴! 그 때부터 '내가 할 게 저거야'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고 3때 롯데월드 뮤지컬 예비단원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첫무대가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 6번 아가씨였죠. 기억나세요?

"네. 기억나죠. 대사가 한마디였거든요. '가자 아들레이드'. 그 대사를 수천번 연습하고. 정말 역할이 작았어요. 당시에 박해미씨 남경주씨 이런 분들이 주인공으로 공연을 하고 있을 때인데.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는 너무너무 안 보이는 작은 역이었는데도 모든 관객들이 저만 보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무대 위에 설 수 있다는 것. 그 첫날 적은 제 좌우명이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입니다."

-뮤지컬이 대중화되면서 가수나 탤런트의 뮤지컬 진출이 활발한데요.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대중들이 바라는 스타들이 와서 뮤지컬을 빛내줬을 때 시너지 효과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간혹 스타들의 연습량이 부족해 공연을 본 관객들의 마음이 떠나는 경우가 있어요. 또 TV 보면 나오는 목소리인데 구태여 돈을 십몇만원씩 주고 보나 그러기도 하고. 저는 무대 위에서만 볼수 있는 배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무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 그러면 그 사람의 존재감이 참 커지지 않을까."

-지금까지 했던 24개 작품 속 뮤지컬 넘버 중에서 가장 '인간 최정원'의 심정을 보여주는 노래는 뭘까요?

"글쎄요… 2000년에 공연했던 '캬바레'에 '인생은 카바레'라는 노래가 있거든요. '인생 뭐 별거 있어' 이런 내용인데. 그래 멋지게 살아야지 한번 태어났으면 이렇게 비유하고 싶고. 맘마미아의 '댄싱퀸' 같은 것도 좋아요. '신나게 춤춰봐, 인생은 멋진 거야, 우후후 기억해~♬' 이런 것들."

-지금 공연 중인 '소리도둑'은 어떤 작품입니까?

"'에이미(Amy)'라는 호주 영화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에요. 아빠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가 말을 잃게 된 후 노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는 스토리예요. 저는 아빠의 사고 이후 말을 잃은 소녀 '아침'이의 엄마 '인경'이고요. 10년 만에 출연하는 창작 뮤지컬이에요. 참 예쁜 작품이죠. 저는 이 작품이 '소리도둑'에 출연하는 '아침'이들이 엄마 역할을 하는 제 나이까지 오래오래 갔으면 해요."

◆나의 딸, 수아

-2000년에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해서 화제가 됐죠. 이후 자연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뭐였습니까?

"수아(그녀의 열살 된 딸 이름이다)를 임신하고 춤 연습을 하고 있는데 막 하혈을 하더라고요.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병원에 갔더니 유산이 됐대요. 저는 한 생명을 제 무모함 때문에 죽였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며칠 동안 속이 메슥거려서 큰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아직 살아있대요. 그런데 '자궁 외 임신'이라더군요. 어쨌든 저에게는 죽었던 아이가 살아온 거잖아요. 그래서 옆구리에 멍이 들 정도로 손으로 밀고 뛰고 그러다 병원에 갔더니 아이가 자리를 잡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중한 아이를 위해 저한테 맞는 분만법을 찾다가 수중 분만을 생각하게 됐고, 마침 SBS에서 전화가 왔어요. 저는 수중분만을 하면서 전혀 의술의 도움 없이 회음부 절개도 안 하고 1시간 30분 만에 낳았어요. 저한테는 최상의 분만법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각각 점수를 매긴다면요?

"글쎄요. 배우로서 점수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집에 가면 대본 생각하고 공연장에 오면 아이 생각하면서 거꾸로 살았어요. 그런데 한번은 수아가 유치원에서 동요동시 발표회가 있었어요. 수아 친구들이 '와~ 수아엄마다' 그러는데 우리 수아가 '아니야. 뮤지컬배우 최정원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멋진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매일 수아한테 잘 못해준다고 고민하는 것보다 낫겠다. 그래서 공연장에 오면 여배우로만 살고 집에 가면 한 아이의 엄마, 한 사람의 아내로 살자. 그렇게 딱 놔버렸더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감성과 열정으로 나이를 잊는다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길 바라세요?

"'맘마미아'나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빠담빠담빠담(Padam Padam Padam)'처럼 나이에 맞는 역할이 있겠죠. 나이보다 중요한 건 제 열정인 것 같아요. 피터팬 같은 삶이라고 할까요. 겉모습은 나이를 먹어가지만 아직 순수한 것 같아요. 아직 낙엽만 봐도 슬프고요.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아줌마가 됐는데도 배우이기 때문에 그런 감성적인 면이 살아있지 않나."

-나이를 먹으며 감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선행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어린 저를 데리고 주일마다 목욕탕을 가셨는데요. 목욕탕을 가면 사라져요. 찾아보면 저쪽에서 동네 할머니들 때를 밀어주고 계신 거예요. 어렸을 때 그게 너무 싫었어요. 엄마가 때밀이냐고. 그런데 제가 엄마 나이가 되니까 가끔 동네 사우나 가면 할머니들 등을 밀어주게 돼요. 이제는 엄마가 항상 목욕탕 다녀오면 즐거워했던 기분을 알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힘이 돼주고 도움을 줬다는 게 작은 것이지만 굉장한 자기만족인 거죠. 그런 선행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어냈던 것이고. 저는 제 딸 수아도 인생의 참맛,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꿈이 있다면?

제가 나중에 무대를 떠나게 되면 끼가 있고 배우로서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고아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 아이들이 훗날 최정원, 남경주보다 더 유명한 뮤지컬배우가 됐을 때 그 모습이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무대에서 관객들의 사랑이 얼마나 더 뜨거운 건지 느끼면 무대에서 더 예술적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무대요? 두근거림과 설렘이 없어지면 떠나야죠."

대구에서도 곧 최정원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출연하는 뮤지컬 '소리도둑'은 6월 28, 29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진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권정호 전문위원

▨ 최정원은?=1969년 서울 출생. 고3이던 1987년 롯데월드 예술극장 뮤지컬예술단 1기 단원으로 입단했다. 2년간 레슨을 받다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6번 아가씨로 데뷔했다. 이듬해 주연배우의 갑작스런 사고로 뮤지컬 '가스펠'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이후 19년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브로드웨이 42번가' '시카고' '캬바레' '프로듀서스' '맘마미아' 등 24작품에 출연했다. 1995년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 2001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 주연상, 2006년 대구뮤지컬대상 인기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