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T업체 대표'에서 '명창' 변신 박수관

혹자는 뿌리없는 소리라 하고 혹자는 구슬픔의 절정이라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소년은 그저 소리가 좋았다. 시골장터에서 만난 각설이패의 타령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상여꾼 소리도 곧잘 흉내냈다. 학교 갈 때면 막대기를 두드리며 우리 가락을 불러댔다. 부모는 한국의 전통민요에 푹 빠져 버린 소년의 기행(?)을 막고자 멀리 부산으로 전학을 보내 버렸다. 소리를 하기에 도시의 환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아낙의 걸음걸이를 노랫말로 만들어 부르다가 뺨따귀에 열이 나기 일쑤였다. 소년은 뱃고동 소리에, 부산진역 화차(火車) 소리에 숨어 노래를 불렀다. 노래연습을 하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소년을 불렀다. 김로인(金路人)이라는 사람. 그는 자신이 동부민요의 달인이라며 소년에게 구슬픈 소리를 들려줬다. 감동의 순간. 소년은 그 자리에서 김로인의 유일한 제자가 됐다.

기계공학 박사 출신의 명장(名匠) 박수관(53)씨가 밝힌 동부민요와의 첫 인연은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기연(奇戀)과 조우해 절정고수로부터 무공을 전수받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운명처럼' 나타난 김로인은 어느 날 '홀연히' 떠나 버렸다. 박씨는 수십년간 소리를 가다듬어 국악계에 혜성처럼 떠올랐다. 박씨와 동부민요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족보'조차 없는 동부민요라는 것을 공학 전공자가 들고 나와 활약하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국악인들도 있다. 박수관은 그러나 논란에 굴하지 않고 제길을 가고 있었다. 남원과 거제도 등을 오가며 바쁜 공연·연습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27일 대구 서구 내당동의 동부민요보존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명창(名唱)이 된 명장(名匠)

-원래 기계 쪽 일을 하셨는데요.

"유년 시절 소리에 소질이 있었는데 노래만 하면 집안 어른들한테 혼쭐이 났어요. 부모님은 너무 노래판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겠다며 6학년 2학기 때 부산으로 전학을 보냈어요. 이후 스승님을 만나 동부민요를 배웠지만 공고로 진학했습니다. 원래 소리로 먹고살 생각은 없었어요. 집안이 몰락해 벌이가 필요했거든요. 줄질 하면서도 계속 노래를 했어요. 춥고 배고파도 연습은 거르지 않았지요. "자연에 가깝게 노래하라, 목이 아닌 가슴으로 노래하라, 남 앞에서 소리하지 마라"시던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서른살이 넘으니 스승님이 "왜 남 앞에서 노래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제자가 소리로 일찍 남의 눈에 뜨이면 국악교육을 받느라 동부민요의 원형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셨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정밀가공으로 명장도 됐고, 한양대에서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전 요즘도 '직업은 공업, 본업은 소리'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김로인이라는 분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소리 못하게 하려고 부모님이 저를 부산까지 보냈는데, 그곳에서 스승님을 만났으니 운명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였으니 1967년인가 그럴 겁니다. 스승님께 '전쟁가' '백발가' '동해 뱃노래' 등 동부민요를 배웠죠. 한 누추한 노인이 '노래 가르쳐 줄까?' 하는데 '이 할배가 뭔 소리를 하노?' 싶더군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잘 부르는 분 못 봤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더니 바로 '할아버지'란 소리가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가르쳐 달라'고 졸랐죠. 부모님 몰래 전수받아야 해서 집의 쌀을 훔쳐 나와 팔기도 했습니다. 그 돈으로 허기도 채우면서 노래를 배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갑자기 종적을 감춰 버렸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혼자 계속 부르다 보니 하나의 창법으로 자리를 잡더군요. 자신만의 '류(流)'가 나오는 거죠."

◆박수관은 음치, 박치다?

-동부민요를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배운 소리(동부민요)를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줄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전국으로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배운 것과 같은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일났다' 싶어 '한국의 부전(不傳)민요'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1996년 러시아 이르쿠츠크국립사범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했어요. '한국에는 상황이 이러한데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한국은 손바닥만한 나라이긴 하지만 각 지방마다 고유의 민요가 있다'고 설명하며 직접 시연을 해보였어요. 그랬더니 대학에서 제 음악을 녹음하자고 하더군요. '녹음할 수 없다' 하고는 귀국했는데 얼마 후 러시아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제 음악을 들었던 글링카국립음악원의 작곡가가 대학에 보고를 했다고 하더군요. 단순히 학원 정도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 내 3대 음악대학에 속한다더군요.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초청 콘서트를 열어주더군요. 그 뒤로 1, 2년간 제 음악을 연구한 뒤 모스크바 교육부 인준을 받아 명예음악학 박사학위를 주고 명예교수에도 임명했습니다.

이후로 해외 공연을 많이 했어요.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도 콘서트를 열어 호응을 받았어요. 2001년 11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초청으로 열린 '세계 식량의 날 기념 및 9·11 테러 희생자 가족 위문공연'에서는 경상도의 상여소리를 들려줬어요. 감동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다들 '한국에 그런 소리가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어요."

-박수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다던데요.

"이런 논리인 것 같습니다. 주차장(동부지방)에 주인(소리꾼)도 없고 등기도 안 돼 있어서(동부민요 향유가 안 됨) 그냥 쓰고 있었는데(다른 지방에서 동부민요를 그 지방식으로 부름) 어느 날 갑자기 주인(박수관)이 나타나 등기까지 끝마쳤다는 거지요. 카네기홀 공연 때 기립박수를 받은 것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1인당 100달러씩 주고 박수를 치게 했다는. '왜 외국에서만 그런 반응이 나오느냐?'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래서 국내에서 공연했는데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1999년에는 공연을 하려고 이력서를 냈더니 국악계 경력이 없다며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회에 나가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경산의 한 골짜기에 가서 70대 농부를 상대로 시험을 해봤어요. '농부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감동하면 대회에 나가자'는 생각이었어요. 노래 한 곡조 불렀는데 농부가 꼼짝 않더군요. '이거 잘못 됐나' 싶어 한 곡 더 부르는데 그 농부가 무릎을 '팍' 치면서 '좋다'고 고함을 지르더군요. 첫해 출전한 국내 주요 3개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박수관과 동부 민요

-지역 국악계와 불화설도 들립니다. 어떤 반응들이 있었습니까?

"'박수관의 음악에는 장단이 없다'고 하더군요. '동부민요란 없는 것을 박수관이 만들어 냈다. 전쟁가·백발가 같은 노래도 지어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없는 음악을 작곡하고 작사까지 했다니 제가 작사·작곡까지 혼자 하는 악성(樂聖)이란 말인가요? 욕 같긴 하지만 오히려 칭찬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써서 발표했습니다.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어요. 들어본 적도 없다기에 음원으로 남기려고 CD까지 제작했지요. 저는 '정·반·합'을 거쳐 새로운 지식이 발전하는 것을 믿습니다. 반대 의견이 있다면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합니다. 항상 반대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자극을 받으면 자기 발전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자는 몇명이나 됩니까?

"100여명 정도 됩니다. 국악 전공자에 도립국악단 출신 등 프로들도 제게 배우러 옵니다. 경기민요 20년 이상 전수자도 있고 판소리 전공자도 있어요. 모두 동부민요의 특성에 반해서 온 겁니다. 동부민요의 옛 원형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제자들에겐 '자립정신'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각박한 세상에서 순화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폐품 수집하고 특강·공연료 등으로 공연단(한국의 소리)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후진 양성에 강한 의무감을 느낍니다. 동부민요를 더 발전시키고 세계 속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동부민요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 호방함과 애절함이 특징이다. 남도민요의 육자배기조와 비교되는 메나리조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메나리토리'라고도 하는 메나리조는 '미 솔 라 도 레' 5음 음계로 구성돼 있다. 주요음은 '미 라 도'로 대개 '라 미'로 마치며 느리게 부르면 매우 슬프게 들린다. 강원도의 '한오백년', 경상도의 '옹헤야', 함경도의 '신고산타령' 등이 대표적이다. 경상도 민요들은 빠른 장단이 많아 흥겹고 경쾌하다.

☞박수관은?

1955년 김해 출생. 정밀기계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독학으로 쌓은 실력으로 1999년 3월 제1회 상주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해 5월 소리의 본고장 전라도(진도)에서 열린 제2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일반부 대상, 10월 제7회 서울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96년 러시아 공연을 필두로 미국(케네디센터 콘서트홀·링컨센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국내외에서 400여회 공연했다. 현재 대한민국 동부민요보존회 회장, 국제델픽위원회(IDC) 대사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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