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의도
이번 논제는 경북도교육청 사이버 논술 교실(http://kben.org)에서 출제한 '2007학년도 2학기 논술 제5회 고등학교 3학년용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권력에 의한 다양한 인간 통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제시문과 논제들을 구성하였습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물리적인 억압 메커니즘을 통한 통제가 주된 통제 방식이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통제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대중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권력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통제의 유형과 성격을 분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는 데에 출제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문제 게시판'의 314번과 '논술 첨삭(고)' 게시판의 818번 글을 참고하세요.
◆학생 글
[문제1]
위의 네 지문은 모두 권력 독점으로 인한 억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는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 기능을 할 뿐 아니라 권력 구조를 내포해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언어가 사회공동체의 계층을 나누고 하위계층을 억압하고 금지하는 역할 또한 담당한다고 말한다. 또 (나)는 수감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인 카메라에게 24시간 감시당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끌어들여 여성의 자유를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남성계층의 권력 행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라)는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계층에게 배타적 자세를 취하고 그들을 밀어내려는 양반계층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문제 2]
영화 '매트릭스'는 한 독재계층이 사회 전체적인 권력을 가지고 다수의 인간들을 억압하는 대규모 차별 현상이 등장한다. 만일 이러한 독재가 현실에 등장한다면 심각한 문제점을 사회에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적인 차별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인간의 천부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점이다.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도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평등권인데, 차별은 평등권을 무참히 짓밟는다. 게다가 이들은 사회를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흔들어 자유권마저 위협한다.
이러한 독재로 인한 억압을 해소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지배계층이 가진 권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피지배계층이 독재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그들에게서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재가 피지배계층에게 피해를 주기는 커녕 사회간 충돌을 억제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형성한다고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이들은 오히려 독재 상태를 더욱 이상적으로 보며 독재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저항을 쓸모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독재가 피지배계층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트릭스' 속의 세계는 정말로 평화로운 세계였는가? 영화 속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당하고 있었고 통제된 삶을 살고 있었다. 이것은 절대 올바른 삶이 아니다.
인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저항을 하고 혁명을 일으켜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배계층은 절대로 권력을 자진해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권이 피지배계층의 투쟁 속에서 얻어진 권리라는 것이다.
박수민(구미여고 2학년)
◆제시문 해설
가. 제시문 (가)는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이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권력을 통한 통제와 지배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언어는 그 안에 욕망과 권력 구조를 내포한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위계관계와 권력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사용 구조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될 때, 한 사회의 사회성을 규정하게 된다. 즉, 특정언어 사용에서의 지배와 금지의 메커니즘을 통해 그 사회공동체의 가치관과 규범체계, 권력구조 등을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통해 그 사회의 권력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 제시문 (나)는 여주교도소를 방문한 후 작성한 탐방 기사다. 이 기사를 통해 볼 때 여주 교도소는 전통적인 교도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최첨단 정보 장치로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800여대의 CCTV가 수감자를 감시하고 있다. 수감자들은 교도관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CCTV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수감자들은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 교도소는 벤담이 제시한 판옵티콘의 진화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제시문 (다), (라)는 성종 실록에서 인용한 것으로, (다)는 남녀 간의 사회적 통제 구조를, (라)는 신분간의 사회적 통제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통제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삼종지도(三從之道)다. 삼종지도는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여자는 세 가지의 좇아야 할 길이 있는데(女子有三從之道)/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在家從父)/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適人從夫)/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좇아야 한다(夫死從子)." 전통적인 봉건사회에서 여자들은 평생동안 억압돼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수가 없었으며, 아버지와 남편, 자식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였다. 한편, 신분 사이에도 분명한 통제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벼슬과 직책에는 높고 낮음이 있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신분이 낮으면, 양반의 지위에 오를 수 없었다.
◆논제 해설
[논제 1]에서는 제시문 (가)~(라)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핵심 화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평가하고자 하였다. 제시문 (가)~(라)는 모두 권력에 의한 통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통제의 성격과 유형에 있어서 다소간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 적어둔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논제 2]에서는 제시문 (가)~(라)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핵심 화제, 즉 권력에 의한 사회통제 시스템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과 극복방안을 평가하고자 하였다. 전통사회이든, 현대사회이든 권력에 의한 통제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통제구조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제 구조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도록 하였다.
◆첨삭 지도
이 문제는 예전에 고려대에서 흔히 출제했던 방식의 문제이다. 여러 제시문들을 읽고 공통된 화제나 주제를 찾아 요약적으로 서술하는 형태인데, 학생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유형이다. 이 문제에서는 우선 글의 서두에 공통 화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제시문을 요약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각 제시문의 분량이 비교적 균등해야 한다. 내용상으로는 각 제시문에서 언급한 핵심어를 자신의 답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 (가)는 언어 또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권력이 행사되는데, 이는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면서 권력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 또는 지배·금지·차단·억압·속박·권력구조 등의 용어를 사용해도 되겠다. 수민 학생의 글에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 기능을 할 뿐 아니라'라는 표현은 생략해도 될 것 같다. 제시문 (나)는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인 상황을 나열한 신문 기사가 제시되어 이를 요약하려면 추상화된 진술을 해야 한다. 추상적 진술이 힘들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대상이나 상황을 비유해 요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제시문 (다)와 (라)는 출전이 같다. 그러므로 함께 묶어서 요약할 수도 있다.
수민 학생의 글은 양호한 편이다. 각 제시문의 핵심을 잘 파악해 요약했다. 제시문 (나)와 같은 형태의 제시문만 더 유의하기 바란다.
제시문들의 공통화제는 권력을 통한 인간 통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즉, 우리 사회에 권력은 필요한가의 문제와 인간을 권력으로 통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또는 인간을 어떠한 수단으로든 통제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견해를 묻고 있다. 그런데 수민 학생의 글에서는 다양한 견해를 바탕으로 논지를 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시작 부분에서 논점을 잘못 파악한 것 같다. 권력에 의한 인간통제가 곧바로 독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분점될 수 있다. 권력을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해 통치행위를 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독재라고 한다. 그러므로 논의의 초점을 독재로 맞추었다면, 그렇게 된 경위나 과정을 논증적으로 서술해야 타당성이 높아진다.
논점을 독재로 두고 논지를 전개하다 보니 반론 부분에서도, 극복방안 부분에서도 뚜렷하고 참신한 내용이 나오지 못한 것 같다.
부분적인 문제 몇 가지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독재가 피지배 계층에게 피해를 주기는커녕 사회간 충돌을 억제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형성한다고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독재는 그 자체로 반사회적이며 반가치지향적이다. '독재'라는 용어보다는 '선군사상'이나 '엘리트 정치' 등의 말로 바꾸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렇게 되면 앞의 논지와는 어긋나는 측면이 있긴 하다.
(인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저항을 하고 혁명을 일으켜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배계층은 절대로 권력을 자진해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권이 피지배계층의 투쟁 속에서 얻어진 권리라는 것이다.)→한 문단에서 두 부분의 내용이 어긋나 있다.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다기보다는 쟁취하기 위해 저항을 했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이번 논술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그 핵심을 다각적으로 사고하여 논점을 찾아 논지를 전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극복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논점을 재검토하는 것이 좋겠다. 글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박병욱(경북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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