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는 2학년인데요. 항상 눈은 반을 감고 일기를 써요. 그것도 버릇인가 봐요.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지난 봄방학 때 거제도에서 학부모들에게 일기쓰기 강의를 한 뒤 나온 질문이다. 그 학부모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이가 일기를 언제 씁니까?", "오후 9시에서 10시쯤에 써요. 어떨 때는 11시 넘어서 쓸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잠자기 바로 전에 쓴다는 말이네요.", "예, 그렇습니다.", "잠이 올 때 일기를 쓰게 했네요. 이제부턴 낮에 쓰도록 해보세요.", "낮에요? 하루 일과도 덜 마친 낮에요?"
학부모는 낮에 일기를 쓰라는 내 말을 처음에는 이해 못했다. 일기는 당연히 하루 일과를 다 마친 밤에, 그것도 잠자기 바로 전에 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아이에게도 당연히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일기는 하루 일을 쓰는 글이니까 하루 일을 다 마친 시각에 쓴다. 전혀 틀리지 않는 말인 듯하다. 그렇지만 일기를 직접 한 번 써보자. 과연 꾸벅꾸벅 졸면서 일기를 쓸 수 있는지.
잠과 일기를 싸움 붙여놓으면 백발백중 일기가 진다. 잠이 이긴다. 숙제도 다 하고, 텔레비전도 다 보고, 이제 따뜻한 이불 밑에서 달고 단 잠을 자면 되는데, 졸음을 이겨가면서 그 놈의 일기를 써야 한다. 선생님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검사를 한다고 해도 잠을 자고 싶을 것이다. 설령 쏟아지는 잠을 이기고 일기장을 펼치는 장한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기는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날 것이 아닌가. 이래서 아이들은 일기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다. 일기 검사라는 무서운 채찍만 없으면 일기장을 당장 내버리고 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기고, 독서고, 공부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싫증을 덜 내고 재미있게 하도록 할 수 있을까'하고 궁리를 해야 한다. 그게 교육방법이다. 그게 어른들이 할 일이다. 그런데 도리어 걸림돌만 만들어 놓고 닦달만 한대서야 되겠는가?
그렇다면 언제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른들이 직접 일기를 써 보면 안다. 언제 쓰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일기를 쓸 일이 생긴 뒤 즉시 쓰는 게 가장 좋지만 이건 쉽지 않다. 일기장을 손수건처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싸움을 했다거나, 꾸중을 들은 일이라면 그 감정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는 진득하게 글을 쓸 수가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집에 오자마자 쓰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집에 오면서 겪은 일을 찬찬히 떠올려서 집안 식구들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쓰도록 하면 된다. 실제로 일기에 쓴 이야기를 그날 밤에 식구들에게 해주는 버릇을 들이면 더욱 좋다.
'잠과 일기를 싸움 시키지 않는다.' 이 걸림돌만 하나 치워줘도 일기 쓰기에서 큰 짐을 덜어 주는 좋은 부모님이 되는 것이다.
윤태규(대구 남동초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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