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렸던 지난달 23일 오전 대구시청 앞. 한 직원이 결재서류와 보고서 뭉치를 드느라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우다시피 한 채 청사로 들어서고 있었다. "힘들겠다"는 인사에 그는 "그래도 눈 올 때보다는 훨씬 낫다"며 웃었다. 시청 본관에서 수백m 떨어진 별관에 근무하면 날씨에 민감해진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2월 중순 대구시청 5층 직원 휴게실. 한 직원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별관 사람들 소외된 심정을 누가 압니까. 특히 동료 선후배들의 다면평가를 받아야 하는 승진 대상자들은 속이 타죠. 몇 년 사이에 낯도 설어지고 모르는 얼굴들도 많아져 본관 근무자들에 비해 훨씬 손해라는 불만이 팽배합니다."
1993년에 준공돼 기능이 한계를 넘어선 대구시청 청사에 대한 안팎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대구시청 본관은 연면적이 1만9천558㎡로 부산시 11만6천910㎡, 광주시 7만1천16㎡, 대전시 7만8천87㎡ 등에 비하면 행랑채 수준이다. 시의 기능과 조직이 갈수록 커지면서 본관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分家(분가)도 점차 늘어 지금은 어디에 어느 과가 있는지 직원들조차 헷갈려하는 상황이다.
1956년에 지어진 시의회 건물 한쪽을 종합민원실로 나눠 쓴 지는 오래. 본관에서 떨어진 동화빌딩 건물에는 환경국이 2005년 옮겨간 데 이어 2006년 교통국, 2007년 도시주택건설본부 일부 과가 잇따라 살림을 차렸다. 모두 10개과 270명이 근무해 37개과 1천1명이 들어가 있는 본관에 비해도 적잖은 숫자다.
이밖에도 인재개발원과 종합건설본부가 중구청사에 얹혀 살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지원단과 조직위원회, 경제자유구역추진기획단이 대구은행 중앙로지점에 비좁게 들어가 있다. 상수도사업본부, 지하철건설본부 등 시의 핵심 사업소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
"민원 많아 골치 아프고,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과만 모였다"며 자조하는 직원들의 박탈감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비좁다 못해 터져나가버린 시청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불편과 구겨진 자존심이다.
"시청이 어디 있는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버스도 지하철도 안 서는 곳에 있는 데다 건물도 낡고 아무 특색이 없어 차를 타고 지나면서도 시청이라고는 생각을 않죠. 250만 시민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창피하지 않은가요."
사정이 이런데도 대구시는 신청사 건립에 손을 놓고 있다. 2006년 1월에 '신청사 건립이 필요하다'는 타당성 조사 결과가 발표됐으나 그해 취임한 김범일 시장은 어려운 경제 사정을 이유로 신청사 건립을 유보했다. 특히 김 시장은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호화롭게 지은 용인시청의 예산 낭비를 지적하며 "관청 건물이 민간 건물보다 좋으면 안 된다"고 호통치자 이 대통령 임기 내에는 신청사 추진을 아예 포기한 듯하다.
물론 시 재정이 열악한데 줄잡아 2천억원 이상이 드는 신청사를 건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론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대구처럼 별관 시리즈를 계속 쓰고 있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마침 동대구역세권 개발 등 민간자본을 유치해 신청사를 건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인다. 단순히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시민 편의와 업무 효율을 위해서라도 별관들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새 청사가 시급하다. 중앙정부조차 국민 편의를 위해 모아봐야 업무 효율도 그리 높아지지 않는 지방합동청사 건립을 전국적으로 추진하는 마당이다. 도시 디자인이 경쟁력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도심 경관에 예산을 들이기에는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덩어리 시청사가 부끄럽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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