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큰 숲' 박경리

옷깃 한 번 스친 인연조차 없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이 있다. 이 浮薄(부박)한 시대에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울타리가 돼줄것 같은 사람…. 5일 별세한 박경리 선생도 그런 분이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모자랄 대문인이지만 우리네 張三李四(장삼이사)들에게는 왠지 '어머니' '스승'을 떠올리게 하는 분이기도 하다.

82년의 삶 속에서 선생은 소박하면서도 정직한 사람, 수줍음 많으면서도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와 궤를 함께했던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시부모'외동딸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죽기살기로 글을 써야 했다. 사위 김지하 시인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외동딸의 가족 뒷바라지도 그의 몫이었다. 선생은 "불행에서 탈출하려는 소망 때문에 글을 썼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선생의 글이 왜 우리 가슴에 그토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알게 한다.

반세기에 걸친 문학여정 중 특히 대표작 '토지'는 빠름과 가벼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던져진 화두와도 같다. 1969년 집필을 시작, 1994년까지 무려 25년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17년간 오로지 이 한 작품에 매달린 끝에 결국 쓰러졌다.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을 새기듯 쓴다"고 했을 만큼 혼신을 기울였던 탓이다. 25년의 세월 동안 박경리 선생 또한 '토지' 속 그 숱한 인생의 무거움에 내내 힘겨워하지 않았을까.

원주시 단구동의 토지문화관을 찾아온 후배들에게 직접 농사지은 먹을거리로 밥상 차려 대접하기를 즐겼던 모습에서 명리를 초탈한 무욕과 청정의 경지를 엿보게 한다. 최근엔 시에 재미를 붙여 그간 써온 시 60여 편으로 시집을 내겠다며 꺼지지 않는 창작 열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수많은 인간군ㄴ상을 다루었던 셰익스피어를 두고 흔히 '千心萬魂(천심만혼)'이라 일컫는다.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森林(삼림)"이라고도 말한다. 큰 스승 아래 제자들이 천하에 가득한 것을 옛말에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라고 했다. 애통해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큰 숲'이 된 선생의 모습을 본다. 고향 통영의 미륵산에서 부디 행복하게 잠드소서.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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