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두진의 책속 인물 읽기] 세익스피어 '오셀로'

쇠망치보다 강한 질투의 파괴력

아름다운 데스데모나는 무어인 오셀로를 사랑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결혼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결혼은 말썽이 있었다. 그러나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

투르크 함대가 키프로스 섬을 향한다는 보고를 받고 오셀로 장군은 섬을 방어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키프로스로 출발한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부관 지위를 카시오에게 빼앗기자 앙심을 품는다.

이아고는 카시오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소동을 일으키게 한다. 이 소동으로 카시오는 파면당한다. 이아고는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에게 카시오의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는 한편 오셀로에게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애 중인 것처럼 보고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 이밀리아에게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로 준 손수건을 훔치게 한다. 그리고 이 손수건을 카시오의 방에 갖다놓는다. 거짓 증거를 만든 것이다. 이아고의 거짓말에 속아 오셀로는 질투에 휩싸인다. 그는 갈등한다. 그러나 결국 질투가 승리하고 자기 삶의 보람이자 등불이었던 아내를 살해한다. 이후 진실이 밝혀지고 오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

셰익스피어의 이 비극을 두고 흔히 '여자는 손수건을 잘 관리해라' '남자는 질투하기 전에 명백한 증거를 잡아라'고 말한다.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 명백한 증거 없이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충고는 '질투의 파괴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이아고가 이 엄청난 음모를 꾸민 배경 역시 질투 때문이다. 그는 "나는 무어놈(오셀로)을 증오해. 내 이불 속에 기어들어서 내 대신 무슨 짓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소문을 들은 이상 실제로 있었던 일로 간주해 복수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라고 말한바 있다.

질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은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질투는 '∼때문에'가 아니라 질투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에 의해 작동한다. 질투는 상상력을 '입 속의 혀'처럼 부린다. 질투가 원하기만 하면 상상력은 어떤 '증거'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소한 눈빛, 일상적인 말투, 다감한 인사 혹은 무심한 인사조차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깃털처럼 가벼운 물건도 '성경'처럼 무거운 무게를 가지는 법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 고요한 상태의 사람은 물증을 찾거나 심증을 보류한다. 그러나 질투에 휩싸인 사람에게 증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눈앞의 증거가 합리적인지 아닌지 구분할 능력도 없다.

질투는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질투에 휩싸인 사람은 '어떻게,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그는 '증거부재'를 '더 많은 의혹' 혹은 '꽁꽁 숨기기'로 간주하고 분노를 키운다.

실체 없는 죄악은 실체 있는 죄악보다 부풀려진다. 그래서 실체 없는 죄악은 드러난 죄악보다 무겁고 잔혹한 처벌을 받는다. 질투에 휩싸인 사람에게 '증거 없음'은 '숨기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죄질이 더 나쁜 것이다.

흔히 질투는 사랑의 뒷면이라고 한다. 믿고 싶은 마음이 의심하는 마음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투하는 마음'을 싸잡아 비판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증상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멋진 고무공을 가진 아이는 자신의 고무공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는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바늘로 공을 끊임없이 찔러댄다. '이 정도로는 터지지 않아…. 내 공은 멋진 공이야, 그러니 터지지 않아.' 아이는 그렇게 점점 더 깊이 찌르고 결국 고무공은 터지고 만다. 고무공이 터지면 아이는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냥 갖고 놀았다면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들 상당수는 끊임없이 아내를 시험한다고 한다. 이 시험은 대부분 의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의심은 신뢰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멋진 고무공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바늘로 찌르기'로 드러나는 것과 비슷하다.

배우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할지도 모를 '다른 마음'을 헤집는 것은 고무공을 찔러대는 것처럼 어리석다. 배우자가 사랑스럽다면 액면 그대로 사랑하면 된다. 그러나 질투에 휩싸인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흔히 질투와 시기심을 동일시하는데, 둘은 다르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질투라면 시기심은 '남이 받는 사랑이 아니꼬운 것' 아닐까. 질투는 위험하지만 시기심은 천박하기까지 하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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