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곧잘 "고향이 어디죠?" "어디에서 왔나요?"라고 묻는다. 인사말이고 무형의 끈으로 엮고 싶다는 표현이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는 인사말이 고차원적(?)이다.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한국인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새 인사말이 생겼다. 지난달 24일 기자가 찾은 안산시 '외국인 거리'에서 한 베트남인이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이곳만의 인사말이었다.
◆국경 없는 거리=안산시 단원구의 '외국인 거리'에는 중국어, 베트남어, 힌두어 등 각 나라별 간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폭 10m, 길이 280m 도로에는 쓰레기 투척을 금지하는 안내문도 4개국어로 번역돼 있었다. 각 상점 앞 스피커에선 외국 노래가 흘러나왔고, 슈퍼마켓에는 각 나라 특유의 식료품들로 넘쳐났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도 외국인 고객을 끌기 위해 외국인 점원을 두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고용창출 효과다. 한 휴대전화 대리점은 베트남 출신 풍 손녀(41·여)씨를 비롯해 중국인, 인도인, 태국인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투앙리(29·베트남)씨는 "일을 마치고 이곳에서 쇼핑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푼다"며 "여자친구도 이곳을 좋아한다"고 웃었다.
거리 옆 만남의 장소에는 간디와 타고르(인도), 달라이 라마(티베트) 등 각 나라 위인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중국인 노인들이 삼삼오오 내기 장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여느 공원과 흡사했다. 이 '외국인 거리'에는 무려 세계 50여개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찾고, 주말이면 지방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5만명에 이른다.
◆안산은 대구의 먼 미래?=안산시의 외국인 거리는 경기 시흥공단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안산시가 의도적으로 조성한 이색 거리가 아니다. 안산시의 외국 노동자 인구도 2000년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늘었다. '외국인 거리'가 있는 원곡동은 주민 3만6천명 가운데 등록된 외국인만 1만4천명(38.9%)에 달할 정도다. 미등록 외국인까지 합하면 주민 두명 중 한명이 외국인인 셈.
하지만 기우는 기우에 그쳤다. 외국인들이 모였지만 '슬럼화' '범죄 증가' 등 예견됐던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인옥(61·여)씨는 "이곳에서 장사를 쭉 해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외국인이라고 이상하게 볼 것도, 흘겨볼 필요도 없는데 괜한 편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범죄 발생도 적다. 실제 지난 3월까지 이곳 관할인 원곡지구대에 접수된 각종 신고는 3천190건으로 한국인만 살고 있는 인근 지구대 접수 건수 4천989건보다 1천800건이나 적었다.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최미라 담당은 "외국인이 많이 모인다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자체가 관리하기 나름"이라며 "외국인 거리는 잠재적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안산시는 올해 중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사업'으로 이곳에 간판정리, 전선 지중화 사업, 만남의 광장 조성 등을 약속했다. 사업비가 100억여원이나 들지만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외국인 문제에 관해선 대구는 안산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다. 안산은 대구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거주 외국인만 1만9천409명으로 최근 3년간 3천명씩 수가 늘고 있지만 달서구의 외국인 거리는 주민반대로 무산됐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외국인들 "여기오면 고향에 온 기분"…안산 외국인주민센터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앞.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부터 머리에 흰 천을 쓴 아랍계까지 이곳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4층 건물 한쪽 벽면에는 만국기 의상을 입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아 '하트' 모양을 보였다.
건물 앞에는 세계 각 나라가 빼곡히 적힌 푯말이 제각각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 실제 그 나라의 방향대로 뻗어 있어 그쪽으로 걸어가면 그 나라가 나타난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다. 건물 전체에 외국인 노동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자국어로 적혀 있었다.
센터 1층 입구로 들어섰다. 각 나라별 시간을 알려주는 6개의 둥근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엘리베이터 출입문도 황인·백인·흑인종이 지구 위에 손을 잡고 서서 웃고 있는 그림이 붙어있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양쪽 벽에도 사진 속에서 우리 이웃들이 웃고 있었다.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 알리(29)씨는 "최근 고향집에 큰 일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아 상담을 받으러 왔다"며 "마치 고향에 있는 한 사무실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2층에도 8개 언어로 쓰여 있는 이정표가 부서 천장마다 걸려 있어 쉽게 담당 부서를 찾을 수 있다. 10개국의 부스가 마련돼 있는 상담실에는 상담을 받으려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이 자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상담중이었다. 민감한 부분은 센터와 협약을 맺은 자문 변호사와 노무사가 맡는다. 이곳 관계자는 "전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로부터 하루 300여건의 임금체불, 이직, 일자리 등을 상담하려는 문의전화가 많다"며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센터에는 금기사항이 있다. 절대 외국 근로자들에게 불법체류 여부를 묻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여기에선 누구나 평등하며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안산시는 2007년 지방 국제화 우수사례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임상준기자
♠ 안산외국인주민센터 김창모 소장
"한국인도 외국에 가면 한인촌을 찾지 않습니까? 고향을 찾는건 당연한 본능이죠."
지난달 24일 경기도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에서 만난 김창모 소장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를 강조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이 한식을 찾고,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죄가 아닙니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서로서로 찾고 모이고 갈구하는 게 당연한거죠. 주민반대를 이유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억누르면 상처가 나고 곪고 또 터져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친구도 없고, 갈 곳이 PC방이나 오락실, 술집밖에 없다면 '제2의 조승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외국인 특화거리도 '어울림의 장'에서 나아가 '평화의 한마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해당 지자체들이 외국인 특화거리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이 그들의 거리에서 그들의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즐긴다면 일터에서 받은 소외감, 스트레스, 피로감을 모두 해소할 수 있지요. 당연히 범죄율 감소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김 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거주지역이나 특화거리 만들기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로만 다인종, 다문화를 외친다고 국민 의식이 바뀐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과 부대끼고 살을 맞대면서 접촉 횟수를 높여갈 때 편견도, 선입견도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부딪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 지자체가 일상에서 피부로 체험되는 밀착형 다문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
"다문화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도를 문맹률도 따진다면 엄청 높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다문화 계몽운동을 펼쳐야 할 때입니다."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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