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 페넬로피

고백하자면, 2008년 현재 완전히 필이 꽂힌 배우중의 하나는 영국 배우인 제임스 맥어보이올시다. '비커밍 제인'에서 젊은 시절의 제인 오스틴과 사랑에 빠지는 귀족 르프로이 역에서 한 눈에 띄더니, '어톤먼트'에 이르면 한 어린 소녀의 오해로 사랑의 끈을 놓치는 로비 역으로 두 눈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는 이제, 완벽히 눈빛으로 말하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굳건한 성채 안에 또아리를 튼 듯, 고독하면서도 결연한 의지를 발산하는 카리스마가 등대 불빛처럼 세상을 비추는 이 배우.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제임스 맥어보이가 9살 연상의 아내가 있다는 사실도, 나니아 연대기에서 반신반인의 괴수였다는 사실도 모두 잊게 만든다. 그러니까 비록 좀 뒤늦게 도착했지만, 2006년도에 만들어진 어리숙한 영화 '페넬로피'를 여성관객들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제임스 맥어보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가문 좋고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마음씨 착한 페넬로피는 유일하게 얼굴에 '돼지코'를 붙이고 태어나는 저주를 받았다. 음.. 들창코가 아닌 정말 돼지코. 얼굴만 따로 떼어 놓으면, 제사상에 얹어다 고사를 지내도 될 돼지코. 뭐 '슈렉'의 실사 영화버전 쯤되는 이 영화에서 페넬로피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는 여전히 음기가 여간 강한게 아니다. '아담스 패밀리'나 '슬리피 할로우' 등 맡는 역마다 조금은 기괴하고 중세적인 분위기가 풍겼으니, '페넬로피' 역시 칙칙한 색감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고딕 공주의 느낌이 물씬하다.

그러다 보니 '페넬로피'는 산뜻한 연두색감이 주는 포스터속 상큼한 봄처녀 보다는 조금 무거운 음영을 머금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때 필요한 것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누군가의 진정한 사랑. 부모의 과잉보호, 가출, 자신을 찾고 마법을 푸는 행운, 게다가 빠질 수 없는 왕자까지. 그 왕자가 바로 전직 작곡가로서 지금은 실의에 빠져 도박에 손을 댄 맥스다. 처음엔 그녀의 돼지코 사진을 찍으려고 잠입했지만, 거울을 사이에 두고 페넬로피와 체스를 두고 거울을 사이에 두고 어떤 악기를 다룰 줄 아는지 테스트 당하기 위해 온갖 악기를 매고 떠들썩하게 '유아 마이 선샤인'을 우렁차게 불러대면서 점차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물론 남자에게 페넬로피는 마음을 빼앗기지만, 모든 것이 쉽게 풀릴리 만무하다.

사실 영화는 한 소녀의 성장담으로 읽기에는 너무 표피적이고, 그렇다고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는 너무 주제가 진지하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엔 너무 진부하다. 남자들이 페넬로피의 돼지코만 보면 도망가는데, 글쎄 정들면 그 돼지코조차 좀 예뻐 보여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영화는 철저히 마법 풀린 공주 이야기로 관객의 예상에 한치도 빗나감없는 이야기의 공식을 주루룩 펼쳐 놓는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데뷔작인 마크 파랜스키 감독은 기존 동화들을 재해석하고, 있는대로의 공주를 사랑한 '슈렉'의 전복성이나 '슬리피 할로우'의 상상력,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이야기 투르기 모두를 좀 더 배워야 할 것만 같다. 또 한가지 가출한 페넬로피 부분부터 두 주인공 맥스와 페넬로피가 도통 서로가 어떤 끈이 없이 따로 따로 논다는 것도 문제.

게다가 가출한 페넬로피와 우연히 만나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조연 역할을 리즈 위더스푼이 깜짝 등장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차라리 저 앙증맞은 돼지코를 크리스티나 리치가 아닌 리즈 위더스푼의 얼굴에 달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사람이 과연 나 혼자일까?

그래서 이 연사 다시 힘주어 진정 영화 '페넬로피'를 봐야 하는 이유는 제임스 맥어보이가 부르는 '유 아 마이 선샤인' 때문이라고 소리 높여 다시 한번 외치는 바이다. 고난도 눈에 띄는 모험도 없이 너무 쉽게 마법이 풀리는 '페넬로피'. 그것이 잔혹 동화이든 로맨틱 코미디이든 아무래도 좀 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모델링 해야 했었다.

심영섭(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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