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르완다'를 찾아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가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 석달여만에 투치족 100만명이 후투족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된 사건을 다룬 2004년작 미국영화다. 동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를 통째 피로 물들이는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죽고 죽이며 동아프리카를 살육의 역사로 몰아넣은 주인공이다. 르완다와 부룬디에서는 투치족의 대학살 이전에 이미 수십만의 후투족이 살육을 당해 왔기 때문이다. 투치족이 집권한 부룬디에는 2005년 초까지 투치족 정부군과 후투족 반군의 내전이 계속됐으며, 이웃나라 콩고의 내전으로까지 확산됐다.
하지만 두 부족의 살육의 역사는 벨기에인이 이 곳을 지배하기 시작한 1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옛적 이 곳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사이좋게 함께 살았는데 후투족의 콧구멍이 투치족의 콧구멍보다 콩알 하나가 더 들어갈 만큼 컸다. 벨기에인들은 콩알 하나만큼이 더 작은 투치족의 콧구멍이 더 고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치족에게 콧구멍이 커서 야만스러워보이는 후투족을 지배하게 했다. 이렇게 시작된 콧구멍의 역사가 먼 훗날 서로간의 대량학살이 거듭되는 야만의 역사가 된 것이다.
'호텔 르완다'의 무대가 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그 곳 사람들의 콧구멍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문제의 콧구멍은 큰 것 같기도 하고 작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봤자 콧구멍의 크기는 '지름 영점 몇 센티미터'의 차이이다. 콧구멍만 보고 후투족과 투치족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물었더니 르완다인 친구는 '척 보면 안다'라고 단숨에 대답했다. 척 보고도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말로 들려서 섬뜩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르완다는 평화롭다.
아니 유쾌하고 활기차다. 영화 때문에 소문난 여행지도 아닌, 아직도 내전의 불씨가 남아있는 르완다행을 결심했었다. 영화의 실제 무대가 된 키갈리의 호텔을 보고 싶었다. 비포장도로와 낮은 단층건물들에서는 언뜻 전쟁과 가난의 냄새가 나는 듯 했지만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활기찬 걸음, 시끄러운 오토바이 경적소리, 초등학교 담장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함성은 대학살과 내전 따위는 이미 오래전 일인 듯 했다. 그리고 서민들의 부페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의 버라이어티(아프리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국토가 작은 덕분에 잘 발달된 교통망,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르완다 땅을 온통 뒤덮고 있는 바나나 나무 이파리들, 열대우림 사이로 뻗어있는 길, 반짝이는 호수를 끼고 달리는 버스는 나에게 탄성을 지르게 했다. 뜻밖에도 르완다는 배낭여행의 천국이었다.
르완다에는 고릴라보호구역과 활화산이 있다. 그리고 콩고 국경지역의 아름다운 '키부 호수'를 따라 절벽 위로 아슬아슬 휘어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길이 있다. 키갈리에서만 잠깐 머물려고 했던 계획은 금세 바뀌어버렸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언덕 아래 키부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악마을 '키부에'에서 머물 때였다. 키부에는 대학살 당시 주민 90%가 학살당한 비운의 도시로, 언덕 위의 작은 교회에 대학살 추모비가 있다. 골목길에서 어깨에 맨 가방에서 유선전화기의 수화기를 꺼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희한한 남자를 만났다. 전화기를 가방에 넣어다니다니, 별일이다.
"그거 휴대폰이니?"
내 질문에 남자가 박장대소했다.
"나는 전화맨이야."
남자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전화맨'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전화맨은 가방 안에 전화기를 넣어다니며 전화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아직 공중전화도 없는 아프리카 시골마을에서 전화맨은 '모바일 통신의 선두주자'이다. 전화맨이 가방 안에 통신 장비를 모두 넣어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 아프리카에 이런 엄청난 모바일 기술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전화할 일이 생기면 엄마는 아이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지 않을까? "얘야, 읍내 가서 전화맨 좀 찾아와라."
하지만 이런 시골마을에도 진짜 휴대전화가 유행이다. 자랑스럽게 목에 휴대전화를 걸고 다니는 남자들이 꽤 보인다. 돈이 생기면 텔레비전보다 먼저 휴대전화를 사고 싶어한다. 문제는 이런 시골마을에는 아직 기지국이 없어서 휴대전화를 휴대만 할 뿐 쓸 수는 없다는 것. 휴대전화를 쓰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큰 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피바다가 넘실대었던 마을에서 사람들은 이제 휴대전화와 같은 일상의 소소한 낭만을 꿈꾼다. 하지만 이웃나라 콩고에서는 여전히 두 부족간의 갈등과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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