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낮 12시 대구 달서구노인복지회관 3층 식당. 안정자(54·여·달서구 송현동)씨는 전동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미동조차 없는 어머니 배두남(84)씨에게 국에 만 밥을 숟가락으로 떠 넣어드렸다. 둘 사이에 식판은 하나였다.
"정자야 너도 좀 먹지 그래. 그러다 병난다" "엄마부터 많이 드세요. 얼른 기운 차리셔야 나도 놀러 좀 다니지…."
점심 수발 때문에 늘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다는 안씨는 "그래도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안씨가 팔순 노모와의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한 사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잔병치레조차 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중풍으로 쓰러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됐다.
"병실에 누워계신 어머니 손을 잡는데, 어머니 손 마디마디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히 굳어 있었어요."
2남 5녀 중 셋째인 안씨는 그때부터 어머니를 모셨다. 간병을 위해 아예 남편과 함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면서 운영하던 교습소도 접었다.
안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 어머니와의 새벽 산책으로 시작된다. 안씨는 휠체어를 밀고 평소 어머니가 잘 다니던 목련시장과 공원 등의 코스를 돈다. 활기 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드리면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해서다. 안씨 본인도 일부러 알록달록한 옷을 차려 입는다. 산책 내내 어제 본 TV 드라마 얘기도 하고, 신문에 뭐가 나왔는지도 얘기해 드린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가 혹 등창이라도 나지 않을까, 쉴 틈 없이 등을 쓰다듬는다. 1년 열두달 거의 빠짐없이 이어지는 일이다 보니 이 산책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가슴 따뜻한 '명장면'이 됐다.
휠체어 동행은 오후 7시쯤 귀가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안씨의 지극한 효심 덕이었을까. 비관적이었던 어머니의 병세는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버이날이 따로 있나요?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한다 해도 부모가 자식을 안고 개울 한번 건너 준 것만 못하다고 하잖아요."
안씨는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한 카네이션을 찬장 깊숙한 곳에 숨겨뒀다.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때마다 어머니는 "왜 아깝게 이런 걸 샀어"라며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랑을 깨닫는 데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어요. 그걸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이미 쇠약해진 뒤더군요."
안씨에겐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 "예전처럼 어머니와 몇시간 동안 마주 앉아서 화투를 치면서 십원 백원 때문에 티격태격해 보고 싶어요." 안씨의 함박웃음 위로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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