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계륵이 됐다. 미래 국운을 열 것이라던 대사업이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 논의로 변질되더니 이제는 여론에 따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업으로 변질됐다. '대통령 임기 내 끝내겠다'던 큰소리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민간 제안 사업으로 변하게 생겼다.
국민들은 그저 혼란스럽다. 도대체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찬반론자들의 아전인수식 주장만 난무하다 보니 어느 쪽이 옳은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전체 공사비만 보더라도 최저 15조 원(찬성 쪽)에서 최고 50조 원(반대 쪽)까지 세 배 이상 들쭉날쭉이다.
19세기 초 뉴욕시는 필라델피아나 보스턴, 볼티모어시 등과 경쟁했다. 뉴욕이 이들을 확실히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도시로 성장한 계기는 다름 아닌 '이리운하'때문이었다. 뉴욕시 허드슨강과 이리호 버펄로를 연결하는 이리운하는 1817년 착공돼 1825년 완공까지 8년이 걸렸다. 길이는 한반도대운하(553㎞)보다 약간 긴 584㎞다. 처음 이 운하 건설을 제안받았을 때 美(미) 대통령 제퍼슨의 반응은 '미친 짓(a little short of madness)'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욕 주지사였던 '드윗 클린턴'은 달랐다. 그는 이 운하의 가치에 주목했다. 그는 운하에 매달렸다. 이를 두고 언론과 여론은 '클린턴의 Folly(쓸모없는 장식용 건축물이라는 뜻, 멍청한 짓을 했음에 빗대어 쓰는 말)'라며 비아냥댔다. 그래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주의회는 1817년 700만 달러(50년 후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하는 데 쓴 비용이 720만 달러였다)라는 거액의 예산지출을 승인했다.
1825년 이리운하가 개통되자 클린턴의 도박은 대성공이었다. 서부로 향하는 물동량은 뉴욕으로 집중됐고 관광객도 몰렸다. 급해진 건 필라델피아 등 경쟁 도시였다. 필라델피아는 서둘러 피츠버그까지 철도와 운하로 연결하는 작업을 벌였다. 볼티모어도 서부를 잇는 철도개설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1852년 이리운하 물동량은 뉴욕주를 연결하는 모든 철도망의 물동량보다 13배나 많았다. 이후 운하 물동량은 크게 줄었지만 이미 역사의 물결은 뉴욕을 향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1867년,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일 때는 외무장관 윌리엄 슈어드가 총대를 멨다. 당시 러시아는 돈이 궁했고 슈어드는 이 틈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들끓었다. '쓸모없는 얼음덩어리'를 사려 든다는 것이었다. 슈어드의 이름 뒤에는 늘 '슈어드의 Folly' 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슈어드는 완고했다. "알래스카가 장차 미국의 가장 보배로운 주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날 알래스카는 무궁무진한 자원을 갖춘 미국의 보배다. 매장 원유가치만 치더라도 6천억 달러를 넘는다. 알래스카에서는 이제 '슈어드의 Folly'라는 조롱 대신 '슈어드의 날'을 지정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경부고속도로 구상을 처음 밝혔을 때 국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야당과 언론은 사업성 검토 없는 정치공사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던 1970년 우리나라 등록차량은 화물차, 승용차 다 더해도 13만 대 남짓했다. 경제성이 있을 리 없었으니 박정희의 이 같은 프로젝트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당시 미국이었더라면 우리 언론은 분명 '박's Folly'라는 조어를 만들어냈음 직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운하 건설이 이 대통령의 말대로 장래 누가 해도 해야 할 국운 융성 사업이 될지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대재앙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는 여론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보는 지도자들의 혜안에 의해 움직여 왔다. 지금 대운하 프로젝트가 여론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확산시키고 국론을 분열시킬 뿐이다. 만들 것인지 안 만들 것인지 이 대통령은 태도를 당당히 밝힐 필요가 있다.
鄭 昌 龍 논설위원 jc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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