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가 저지르고 피해는 우리만" 상인·서민 분통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 '원산지 표시제'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정부가 엉망으로 해놓고 서민만 죽어나니…."

대구의 음식점 주인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100㎡(약 30평) 이상 음식점까지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토록 한 데 이어 연말에는 삼겹살까지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키로 했기 때문. 광우병, AI 등으로 손님이 확 줄어든 상황에서 다음달 22일부터 구이용 쇠고기뿐 아니라 갈비탕, 육회, 갈비찜, 탕수육 등 쇠고기를 원료로 한 음식에 원산지와 종류를 일일이 표시해야 한다.

음식점중앙회 대구시지회 관계자는 정부의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강화는 광우병 직격탄을 맞고있는 영세 요식업계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한 식당업주는 "쇠고기를 도축장에서 바로 구입하는 대형식당은 문제가 없지만 도매상에서 고기를 구입하는 대다수 영세 식당업주들은 주는 대로 받는다"며 "중간 상인들이 원산지를 속이면 식당업주만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허위 원산지 표시로 걸리면 벌금 100만원을 물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는 삼겹살집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육류 원산지 표시제 단속을 담당하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삼겹살은 국내산보다는 헝가리, 덴마크, 벨기에, 미국, 칠레 등에서 수입되는 고기가 상당수다. 한 삼겹살 식당업주는 "원산지를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외국산이라면 무조건 기피하는 풍토 때문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민들도 먹을거리 때문에 난리다. 광우병 괴담으로 쇠고기 음식점을 피하고 싶고 AI파동에 계란조차 먹기 겁난다는 이들이 많다. 직장인 조모(33)씨는 "광우병 파동 이후 쇠고기로 만든 모든 음식에 의심이 간다. 갈비탕도 먹기 싫다"고 했다.

AI 확산은 먹을거리 대란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농협중앙회 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kg당 2천417원이던 닭고기 가격은 8일 기준 2천232원으로 떨어졌다. 대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생닭을 파는 최모(55)씨는 "AI 때문에 손님이 50%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중구의 한 횟집은 이달 들어 계란찜 메뉴를 아예 치워버렸다.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은 AI와 연관이 없는데도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고 했다. 쇠고기를 원료로 한 햄버거나 닭고기를 넣은 치킨버거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 햄버거 체인점 관계자는 "햄버거 매출이 20%가량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관계자는 "닭을 취급하는 식당 중에는 종업원 인건비를 못 줘 휴업에 들어간 곳도 있다. 복날 대목에 맞춰 닭을 비축하고 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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