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일본에서는 요즘 시각으로 볼 때 엽기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오사카에서 개최된 제5회 大阪內國權業博覽會(대판내국권업박람회)에 설치된 學術人類館(학술인류관)의 인종 전시회였다. '野蠻人類館(야만인류관)'으로 불렸던 그곳엔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비롯해 조선, 중국, 琉球(유구:오키나와), 인도 등 7개 민족의 남녀가 전시됐다. 모두 일본제국주의가 마수를 뻗은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서양 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문명국가로서의 일본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 인종 전시회의 주목적이었다.
특히 臺灣館(대만관)에는 전족한 중국 여성과 중국인 아편 흡연자들을 전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어린애 발처럼 작은 기형의 발을 가진 성인 여성과 몽롱한 눈빛을 한 아편 중독자의 모습은 그들에게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중국인을 야만인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의 중국 식민지화 의도를 표출하는 행사였다.
1906년, 미국에서는 사람이 아예 동물원의 동물이 돼버렸다. 최근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알려진 비운의 아프리카 흑인 남자.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종족인 콩고 피그미족 출신인 오타 벵가는 전쟁에서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팔려와 뉴욕의 한 동물원 영장류 우리에 전시됐다.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동물원 측 기획에 따라 24세의 벵가는 일거수 일투족 모두 관람객들의 구경거리가 돼야만 했다. 먹고살 길 없었던 흑인 남자의 눈물겨운 삶이 100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 사람들로부터 뒤늦게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살던 밀드레드 러빙이라는 흑인 여성이 68세 나이로 타계했다. 1958년 백인 남성과 결혼했던 그녀는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혼 때 연행돼 부부 모두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부부는 법정 투쟁에 나섰고, 마침내 1967년 '인종 간 결혼 금지는 위헌'이란 판결을 받아내 미국 인권운동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이제 미국에서 인종 간 결혼 금지의 법적 벽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연간 5천900만 쌍에 이르는 미국 내 결혼 중 인종 간 결혼은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완고한 벽은 결국 '인간의 마음'일까. 결혼 이민자가 11만 명이 넘는 우리사회에서도 높게 둘러쳐진 벽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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