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상 시나리오)'석유 대란' 10년 후 어떤 일이…

▲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대에 진입할 경우 국내 휘발유의 ℓ당 가격은 2천300원대까지 뛰게 될 전망이다. 현재 1천680원인 휘발유 가격 중 원유가는 600원 정도. 따라서 원유 가격이 현재의 2배 정도 뛴다면, 원유가격만 감안했을 때 600원이 추가되는 셈이다. 하지만 치솟는 원유 가격 때문에 정부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유류세를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상승폭은 이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갤런당 3달러선인 휘발유 가격이 7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올랐을 때를 가정해서 만들어본 주유소 휘발유 가격 표시판.
▲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대에 진입할 경우 국내 휘발유의 ℓ당 가격은 2천300원대까지 뛰게 될 전망이다. 현재 1천680원인 휘발유 가격 중 원유가는 600원 정도. 따라서 원유 가격이 현재의 2배 정도 뛴다면, 원유가격만 감안했을 때 600원이 추가되는 셈이다. 하지만 치솟는 원유 가격 때문에 정부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유류세를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상승폭은 이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갤런당 3달러선인 휘발유 가격이 7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올랐을 때를 가정해서 만들어본 주유소 휘발유 가격 표시판.

2018년 5월 10일.

때론 상상보다 현실이 가혹한 법이다. 10년 전 배럴당 유가가 120달러를 육박할 때 과연 200달러 시대가 올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투기자본의 개입과 산유국 주변의 정세 불안이 유가 급등을 가져온 이유라며 조만간 다시 기름값이 떨어질 것으로 낙관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일부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는 마치 멀리뛰기를 준비하는 개구리마냥 잠시 움츠렸다가 다시 폭등세로 돌아섰다. 어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6월분 가격은 배럴당 300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경제는 패닉상태로 접어들었다. 전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은 1억 배럴을 넘어섰다. 10년 전 8천600만 배럴에서 한동안 시소게임을 벌이더니 중국, 인도, 러시아의 소비 증가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 탓에 소비량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대체 에너지 개발은 가속화했지만 아직 화석연료를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수소가스 충전소가 대도시 중심으로 보급됐지만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아직 고가인 수소연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부유층은 제한돼 있다. 싼 값에 공산품을 공급하던 중국은 석유 대란이 닥치면서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고, 결국 전세계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진앙지가 되고 말았다.

석유 제한공급이 이뤄진 지 3년이 넘었다. 기름을 구하는 것은 더 이상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11년 전인 2007년 10월 중국에선 현재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상하이, 광저우, 푸젠, 저장, 산둥성 등 동남부 연안지역에서 석유 공급난이 벌어졌다. 중간 상인들은 기름값이 더 오를 것이라며 그나마 부족한 기름을 사재기했고, 대형차량들이 몰리는 외곽지역에서는 기름공급을 제한하거나 '기름없음' 간판을 내걸고 차량 진입을 막는 주유소까지 생겨났다. 일대 주유소 2천여곳이 문을 닫았고, 상하이 주유소의 40%만이 정상 영업을 했다. 2008년 봄 네팔은 어떠했나? 기름 한 통을 얻기 위한 오토바이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 8시간을 기다려서 간신히 기름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제한 급유가 끝나면서 힘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발전소를 돌리지 못해 도심에서조차 제한적으로 전기공급이 이뤄졌다. 10년 뒤 우리 모습이 그러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 2004년 한국 정부는 2019년까지 하루 석유 소비량의 20%를 대체할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당시 수소 에너지 선진국에 속하던 유럽 각국들도 2020년까지 수소 시내버스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소 생산에도 에너지가 든다. 바람, 지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소 생산은 당초 낙관과 달리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꼽혔던 '인공태양' 즉, 핵융합에너지 개발은 이미 1988년부터 시작돼 205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머나먼 유토피아로만 느껴진다.

승용차는 버려진 지 오래다. 10여년 전 영국 BBC가 제작했던 '2016년 오일쇼크'는 그나마 낙관적인 셈이다. 송유관 절도범들이 마치 각다귀처럼 들끓는 탓에 이들에 대한 가중처벌법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작년 말에는 '57분 교통정보'가 사라졌다.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 됐다. 제한 급유가 진행 중인데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기름을 구하는지 알 수 없다. 안락한 삶을 꿈꾸며 전원주택을 찾아나섰던 사람들은 다시 도심으로 몰려들었다. 슬럼가처럼 변한 도심 주택가에는 자전거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이미 2년을 넘겼다. 세금을 아무리 낮춰도 치솟는 국제 유가를 감당할 수 없었던 정부는 아예 손을 들고 말았다. 물류는 멈췄고, 산업생산은 나날이 위축되고 있다. 대형 소매점의 상품 진열대는 텅 비어있기 일쑤이고, 주말 쇼핑에 차를 몰고 가는 것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다. 다행이 동네 슈퍼마켓들의 숨통이 트였지만 판매할 상품이 워낙 부족하고 값도 비싸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한 때 '냉방병'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지? 지구 온난화가 가중되면서 여름에는 거의 매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지만 에어컨은 엄두도 못낸다. 체력이 바닥난 노인들이 무더위에 지쳐 숨진 소식은 작년 여름에도 수십 건이 이어졌다.

내일이 두렵다. 채산성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고,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선 지 오래다. 지금처럼 자전거를 타고라도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10년 전, 우리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우울한 삶이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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