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족 '아이언맨' 이준하씨

철인3종? 처음엔 다 미쳤다 했어요…저도 그 중 하나였죠^^

▲ 11일 대구에서 열리는 철인 3종 경기를 앞두고 포항철인클럽 회원들과 이준하씨(오른쪽에서 네번째)가 함께 수영 훈련에 나섰다.
▲ 11일 대구에서 열리는 철인 3종 경기를 앞두고 포항철인클럽 회원들과 이준하씨(오른쪽에서 네번째)가 함께 수영 훈련에 나섰다.

'과연 장애란 무엇일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이 생각에 몰두했다. 6시간 전 인터뷰를 위해 포항으로 차를 몰 때만 해도 기자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찬 채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사나이. 세상을 향한 울분에 차 있을 법도 했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오기로 똘똘 뭉쳐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비록 그가 한쪽 다리의 장애를 극복했을지언정 자기 삶이나 세상 사람을 향하는 시선만큼은 아직 삐뚤어져 있을 것이고, 그런 이야기를 기사에 담아 '이들이 가진 세상에 대한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보다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눈길로 장애인들을 대하자'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준하(32)씨를 만난 뒤, 아니 그와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자마자 3분도 채 안 된 시간에 기자는 선입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지 깨달았다.

◆장애인과 아이언맨

기자가 찾아간 지난 3일은 마침 '포항철인클럽'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11일 열리는 대구 철인 3종 경기를 앞두고 수영과 마라톤 등 막바지 훈련을 한다고 했다. 이준하씨는 '대구 X-아이언맨' 소속이지만 사는 곳이 포항이다 보니 이곳 회원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수영 훈련을 하는 '자명지'라는 저수지는 대구~포항 고속도로 포항IC에서 멀지 않은 곳. 이씨와 포항IC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약속시간에 5분 정도 늦고 말았다. 톨게이트 옆 주차장에는 대여섯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씨는 그곳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사람들과 섞여 있는 그는 전혀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절룩거리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의족이 드러나지 않아서 혹은 휠체어에 기대앉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도 아니다. 기자를 알아보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평범한, 하지만 정말 잘 생긴 호남형의 30대 초반 젊은이일 뿐이었다. 그의 승용차 앞에 붙은 장애인 표지를 보고서야 '아! 그는 장애인이었지'하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저처럼 이야깃거리도 없는 사람을 보겠다고 멀리서 오셨네요. 훈련장은 여기서 별로 멀지 않으니까 제 차를 따라오세요." 이때만 해도 그저 조금 겸손한 인사치레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코 가식도 인사치레도 아님을 깨닫게 됐다. 훈련장인 자명지는 자동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농로를 따라 5분 정도 달려간 거리에 있었다. 이씨는 자신의 차에서 MBT(산악용 자전거)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조립한 뒤 훌쩍 앞서가 버렸다. 바지 속에 숨겨진 의족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저수지에 도착한 뒤 오르막을 자전거로 오르는 모습을 찍고 싶다는 취재진의 부탁에 그는 선뜻 응했다. 제법 경사가 급한 비탈길이었지만 그는 가뿐하게 올라섰다. 숨조차 헐떡이지 않는 그를 보며 '아이언맨'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젊은 날의 꿈과 행복

예정된 훈련시간은 아직 40여분이 남았다. 자명지 옆 그늘에 서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사연부터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승용차 범퍼에 다리를 부딪혔죠. 그때만 해도 혈기왕성하던 시절이었죠. 병원에 누워서 발가락 감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자칫 패혈증이 올 수도 있으니 무릎 아래 부분을 잘라내자.' 그래서 오른쪽 무릎 14㎝ 아래를 결국 잘라내고 말았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동안 말을 못했다. 한참 뜸을 들인 그는 다소 어이없게도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 믿지 못하겠지만 별로 기억이 안 나요. 사고가 1993년에 났으니까 벌써 15년 전이잖아요."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한창 피가 끓어오르던 나이에 신체 일부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픈 추억이 잊혔다고 믿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요.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때 아픔이 남아있겠죠. 그 일이 있고 난 뒤 하루도 빠짐없이 이를 악물고 다짐했습니다. 잊어버리자고.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눈물이 기억납니다. 평생 아버지의 눈물을 두번 봤는데, 한번은 제가 사고로 다리를 잃게 됐을 때 그리고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을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이 끝나고 두달간 누워있으면서 두차례 자살을 시도했어요. 한번은 계단에서 굴렀는데 금세 들키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죠. (웃음) 그리고 동맥을 끊으려고 시도했었는데…. 그건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그가 너무도 무덤덤하게 말하는 바람에 기자는 그가 웃을 때 함께 웃고 말았다. 사실 결코 웃을 일이 아닌데. 그는 어느 정도 '해탈'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묻고 있으면서도 그가 장애인임을 자꾸 까먹게 됐다. 고교 시절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이씨는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꿈꿨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고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록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삶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것은 잊으려고 애쓴 탓도 있겠지만 지금 너무 행복하다 보니 정말 잊힌 것도 있어요.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행복하거든요."

◆사랑과 직장

남자가 말하는 멋진 남자와 여자가 말하는 멋진 남자는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 이준하씨는 누가 봐도 멋진 사람이다. 일단 겉모습이 그렇다. 떡 벌어진 어깨와 잘 발달된 가슴 근육,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매와 오똑한 콧날. 그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갔지만 미처 결혼 여부는 알아보지 못했다. 가족관계를 물었다. "아직 결혼 못했어요." 짧은 대답을 한 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많은 생각이 오가는 눈빛이었다. 이어지는 질문을 미룬 채 기자는 기다렸다. 이윽고 말문을 연 그는 한풀 낮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그동안 몇명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하더군요. (다시 침묵) 결혼이 그래요. 둘만 사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은 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쪽 부모님이 반대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설득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 되더군요. 부모님의 반대에 부닥치자 결국 그 사람도 포기하더군요." 인터뷰 중 가장 힘들게 답한 대목은 바로 이 말이었다.

그는 포항에 있는 직장에 다니며 혼자 생활한다. 대구보건대학 임상병리과를 졸업한 그는 몇년간 병원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가 현재 직장으로 옮겼다. 서울의과학연구소 포항고객지원센터 소장. 그의 직함이다. 병원에서 의뢰한 혈액이나 신체조직 등을 검사하는 전문기관이 그의 직장이고, 그는 영업사원이다. 병원을 상대로 뛰어다니며 거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그의 일. 사람을 많이 상대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힘들죠. 말 그대로 영업사원 아닙니까. 게다가 직원들도 관리해야 하고, 일이 제대로 안 되면 독려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노릇도 합니다. 사실 세상을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 중에 99%는 가능한 일이었어요. 안 될 거라고 포기한 탓에 불가능해 보였을 뿐이지 실제 부딪쳐보면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직원들이 쉽사리 일을 포기할 때 가장 많이 화가 나요."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적성에 맞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 앉아있는 것보다 사람들을 상대하며 영업을 뛰는 일에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적잖은 연봉을 받는 유능한 샐러리맨이다.

◆철인 3종 경기와 내 인생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매형(윤종환씨)이다. 철인 3종 경기 마니아인 매형의 권유로 그는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그가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매형이 운동을 권했을 때 100명 중에 99명은 반대했습니다. 1명은 매형이었고, 나머지 99명 중에는 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수영은 조금 할 줄 아는 정도였고, 의족을 한 상태에서 달리기나 사이클은 해본 적도 없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죠." 벌써 8차례나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그는 6차례 완주했다. 첫 대회는 지난 2006년 대구시장배 대회. 당시 4시간 18분이던 기록을 지난해 7월 울진 대회에서 3시간 35분대로 단축시켰다. 하지만 제한시간인 3시간 30분대에는 아직 들지 못했다. "이번 대구대회에서 첫 제한시간 돌파를 기록할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다. 의족을 한 탓에 약간 불편하려니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지난달 27일 열린 통영 철인 3종 경기 월드컵 대회에서 조금 무리한 탓에 오른쪽 다리 아래 부분에 약간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통영 대회에서 3시간 38분대에 완주하면서 참가선수들과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수영은 자신이 있어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기록이 좋은 편이죠. 하지만 사이클, 특히 달리기는 아직도 너무 힘들어요. 수영과 사이클을 마치고 마지막 종목인 달리기를 할 때면 절로 욕이 튀어나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결승점을 통과하는 그 순간, 다음 대회를 떠올립니다. 지난 통영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경기가 끝나자마자 '대구대회에서는 기록 경신이 가능하겠군'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군요."

주위 사람들은 요즘 이준하씨를 보며 이런 말을 곧잘 한단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이씨는 이렇게 답한다. "나쁠 일은 또 뭐가 있어요? 일은 열심히 하면 되고, 좋아서 하는 운동이 있으니 그것도 좋고." 포항철인클럽 동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고, 그도 수영수트로 갈아입은 뒤 물에 뛰어들었다. 이상고온이라고 하지만 아직 5월의 저수지는 차갑다. 하지만 까만 수트를 입고 물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마리 물개다. 이렇게 수영하고플 때 마음껏 수영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물개. 물개에게 다리가 그러하듯 그에게도 한쪽 다리는 별로 의미가 없어보였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권정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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