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사랑 사용 설명서

간혹 사랑이란 것도 고장을 일으킨다.

어느 나사가 빠졌는지 찾을 수도 없고, 작동도 시원찮아진다. 시동만 걸면 되던 것이 어느 날부터 말을 듣지 않고, 기름 치고 광을 냈는데도 때깔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랑 사용설명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나는 사랑하는 법을 알기는 아는 것일까. 혹 방법을 몰라 안아주기보다는 물어뜯고, 보듬어주기보다 할퀴는 것은 아닐까.

지금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상영되고 있는 마이크 바이스 감독의 '미스언더스탠드'(The Upside Of Anger, 2005)는 사랑 사용설명서와 같은 코미디영화다. 엄마와 네딸, 옆집 남자를 통해 사랑의 방법들을 전해준다.

엄마 테리(조안 알렌)는 신경질이 나 죽을 지경이다. 남편이 어느 날 젊은 비서랑 바람이 나서 스웨덴으로 떠나버렸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 버림받은 것과 배신감에 치를 떤다. 안 그래도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네딸까지 말썽이다. 엄마에게 대들지를 않나,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편을 들지를 않나. 거기다 옆집 남자(케빈 코스트너)까지 기분이 상하게 한다. 캔맥주를 들고 매일 문가에 기웃거린다.

이런 엄마를 보는 딸의 입장은 어떨까. 엄마는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말에도 가시가 박혀 걸핏하면 시비고, 수틀리면 화를 낸다. 아빠 얘기도 못하게 한다. 아빠에 대한 분노는 이해하지만, "아빠 물건이 작았다" "능력 없다"는 심한 말까지 할 것은 뭐람. 좀 심하다.

옆집 남자 데니의 입장을 보자. 옆집 남자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단다. 혼자 애쓰는 여자가 안쓰럽다. 내가 도와줄 것은 없을까. 그런데 왜 그리 쌀쌀맞지? 히스테리가 심한 여자네. 그래도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미스언더스탠드'는 감독이 부모가 이혼한 후 겪은 감정들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소통하지 못하는 감정의 흐름들이 얼마나 위험한 오해를 가지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분노 뒤집기'라는 원제를 한국에서는 '오해'라는 뜻의 '미스언더스탠드'로 바꿔달았다. 그 오해는 엄마의 분노와 지독한 히스테리의 반전을 뜻한다. 과연 아빠가 바람이 났을까. 여비서와 함께 스웨덴으로 떠난 것이 사실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영화의 마지막, 테리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오해에 오해를 더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땅을 친다. '오해'(misunderstand)가 '미스 언더스탠드'(Miss Understand)로 바뀌는 순간이다.

요즘 드라마도 사랑이고 노래도 사랑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 식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사랑 사용설명서가 있어도 읽지 못한다면 어떡하지? 마음의 눈이 막혀 있다면?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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