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복 입은 아이들이 왜 촛불을 들었나

'10대들의 반란'인가. 청소년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무감각하던 청소년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는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을 벌이고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다. 지난 3일 대구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촛불집회는 10일에도 예정돼 있다. 이들은 집회를 진행하고, 자유롭게 반대 발언을 쏟아낸다. 청소년들은 왜 세상을 향해 'no'를 외치고 있을까. 누가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

◆쇠고기 수입은 나의 문제

10대 청소년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으로 자신들이 광우병의 첫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질 낮은 학교 급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학교 급식과 군대 배식에 먼저 쓰일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자 불만이 폭발했다. 먹을거리에 대한 위기감, 미국산 쇠고기가 자신의 '생명'과 직결됐다는 인식이 집단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미향 (사)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상임이사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욕구를 자극한 셈"이라며 "학교 급식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광우병에 대한 체감 정도는 훨씬 크고 실질적이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느끼는 광우병 공포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광우병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더구나 각종 매체에서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인터넷을 통해 온갖 허위 정보마저 떠돌면서 공포는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까지 띤다. 김채원(18·여)양은 "쇠고기를 먹지 않아도 광우병에 걸린다는데 도대체 왜 수입하는 거냐?"며 "애써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노력해도 20, 30대가 돼서 죽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고3이라는 손모(19)군은 "30개월령 이상인 쇠고기인지를 부정확한 육안으로만 검사한다는데 어떻게 믿고 먹겠느냐"며 "부모님도 쇠고기를 절대 먹지 말라는데 급식으로 나오면 안 먹을 수도 없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괴담도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곧 죽는다거나 광우병이 공기나 물, 혹은 키스로 전염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마저 확산되고 있는 것. 장해진(18·여)양은 "대운하를 몰래 추진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거론해 여론을 들쑤셨다는 얘기도 인터넷에서 봤다"며 "미국산 쇠고기를 급식을 통해 강제로 먹어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섭다"고 했다. D고교에 다니는 우상희(18·여)양은 "학교 급식을 먹다가 병에 걸려 죽기는 싫다"며 "집회를 한다고 해도 정부에서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이명박 탄핵'으로 비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한 경쟁과 줄 세우기'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쇠고기 수입 문제와 겹치면서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어 몰입교육과, 0교시 부활, 촌지 합법화, 학교자율화 조치 등 경쟁과 서열을 강조하는 각종 정책들이 '울고 싶은' 청소년들의 뺨을 때려준 셈이 됐다는 것.

이명박 탄핵에 서명했다는 변모(18)양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5일제를 취소하고 대학 수시 모집도 폐지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함께 행동하는 모습이 좋아보여서 시간이 되면 촛불집회에 참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은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타고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경우 적게는 1, 2통에서 많게는 10여통 이상 받기도 한다. 각종 안티MB, 정책반대시위연대, 미친소닷넷 등 각종 인터넷 사이트도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논술 교육과 두발 자유화 등 청소년 운동도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고3인 이영태(19)군은 "논술을 준비하면서 광우병 논란을 다뤄봤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며 "부모님은 절대 집회에 가지 말라고 하시지만 만약 부모님이 공정한 정보나 여론을 접하신다면 마음을 바꾸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회의 성격도 과거와 달라졌다. 지금 청소년들은 1990년 이후 출생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들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의 시위 문화에 대해 기억이 없다. 대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과 효순·미선 사건 당시 촛불시위가 집회의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집회 참여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고 이들은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이에 따라 최근 잇달아 열린 촛불집회는 정치적 선동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다양한 패러디와 풍자를 곁들인 축제와 문화의 장이 됐고, 접근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인기 연예인들의 잇따른 반대 목소리도 10대의 감성을 움직였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동방신기의 팬클럽 '카시오페아'는 홈페이지에 '80만명 카아의 힘으로 사랑하는 동방신기를 광우병 위험에서 지켜내자'는 요지의 글을 올려 집회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슈퍼주니어, SS501, 신화 등의 팬들도 '광우병 UCC'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였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는 점, 기성 세대가 그러한 불안을 조성하면서도 아무런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 등도 집단 행동의 동기로 작용한다. 김규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집단적인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며 "단순히 광우병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데다 정치권 일부와 여론이 동조하면서 사회적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엇갈리는 시선들

거리로 나선 10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은 청소년들의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촛불집회 참여 뒤에는 조직적인 배후 세력이 있으며 인터넷을 근거지로 한 일부 세력의 선동과 잘못된 정보에 어린 청소년들이 감성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휴대폰 문자메시지 추적에 나서는 등 수사를 벌이고, 교육당국은 중·고교생의 시위 참석을 차단키로 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7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관련해 "배후 세력이 학생들의 참가를 종용하고 있다"며 전교조를 지목해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상당수 청소년과 전문가들은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모(17)양은 "일부 과장된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광우병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청소년들이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바보는 아니다"고 말했다. 안미향 우리세상 상임이사는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선동이나 사주를 한다고 해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특정 사안에서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청소년들에게 한 단계 높은 사회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현장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피부와 직결되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실천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 반면 지나치게 잦은 의사 표출과 공론화 시도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의사 표출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을 느끼게 되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공론화를 시도할 수 있고, 이 경우 단순히 개인적인 불편이나 고민에 대해서도 공론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 김규원 교수는 "집단행동에는 아이들만의 진지한 내부 성찰이 함께해야 하며 피상적으로 언론이나 괴담에 반응하는 식의 시위는 '부화뇌동'에 그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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