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영화를 보자] 우디 앨런 '헐리우드 엔딩'

이번 주 안방극장에는 5편의 영화가 방영된다.

EBS에서는 이틀에 걸쳐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2편이 나간다. 엠마 톰슨과 안소니 홉킨스의 '하워즈 엔드'(1993년)와 제임스 윌비, 휴 그렌트 주연의 '모리스'(1987년)다. 영국 상류층 사람들의 내밀한 감정을 잘 엮어내는 감독의 수작들이다. 이만희 감독에 문숙 신성일 고영수 주연의 '태양을 닮은 소녀'도 EBS 한국영화특선으로 방영된다.

5편 중 KBS 명화극장의 '할리우드 엔딩'을 추천한다. 유쾌한 수다꾼 우디 앨런(63)이 감독한 작품이다.

우디 앨런은 '천재'라는 수식어답게 데뷔 40년을 훌쩍 넘긴 요즘도 해마다 신작을 발표하는 대단한 정력과 열정의 소유자다. 2000년 '스몰 타임 크룩스' 이후 벌써 5편이나 된다. '할리우드 엔딩'은 지난 2005년 가을에 한국에 개봉된 작품이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수상했던 왕년의 대박감독 발 왁스만(우디 앨런). 세월의 풍파 속에 이젠 별 볼 일 없는 CF나 찍으며 소일한다. '다시 영화를 찍고 싶다' '맡겨만 주면 대박낸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 지도 벌써 10년째. 어느 날 그에게 컴백의 찬스가 주어진다.

최고의 시나리오에 제작비 6천만 달러의 프로젝트 '잠들지 않는 도시'. 문제는 이 영화의 제작자가 자신의 아내를 훔쳐간 할(트리트 윌리엄스)이고, 프로듀서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 엘리(테이어 레오니)라는 사실. 그래도 영화만 만들 수 있다면 살인도 할 처지의 그가 마다할 수 없는 대프로젝트의 유혹.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눈 딱 감고 일에 착수한다.

그런데 정말 눈이 멀고 만다. 의사는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심리적 장님 상태'라고 진단하지만, 이조차 감추고 영화를 찍기 시작하는데… .

우디 앨런의 톡톡 튀는 대사와 슬랩스틱 코미디가 박장대소하게 한다. 특히 장님이란 비밀이 들통날까봐 조마조마하게 하는 스릴도 함께 선사한다. 은근히 유혹하는 여배우 등 촬영장의 좌충우돌이 흥미를 더한다.

'할리우드 엔딩'의 과녁은 할리우드다. 알다시피 할리우드는 가장 중요한 창의성을 잃어가고 대신 몸집만 비대해지고 있다. 갖가지 동맥경화와 심리적 장애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주체할 수 없는 거대괴물이다.

우디 앨런은 2002년 한 수상 소감에서 "제작사는 단지 이윤이 남는 프로젝트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한 영화들은 대체로 사려 깊은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며 테크닉의 눈부신 성장을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목표의 전부인 영화들이다. 우리는 점점 인간적인 요소들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까다로운 연출방식으로 유명하던 명감독이 이제는 제작자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갓난애까지도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상황이나 눈이 멀어버린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로도 촬영을 진행하며 감독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에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는 것이다. 눈이 먼 감독은 돈에 눈먼 할리우드의 은유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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