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 대영제국의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역사적인 결단을 했다. 영국해군 함정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독일과의 경쟁 때문이었다. 이로써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는 영국 국가안보의 핵심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에너지 안보는 더욱 중대해졌다. 산업화시대에 에너지는 국가경제의 혈액과 같기 때문이다. 그 흐름에 일시적 장애만 있어도 마비가 오고 좀 더 지속되면 치명적이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 에너지 안보는 가히 국민의 사활, 국가의 존망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와 같은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에 착안하여 자원외교에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만시지탄이랄 만큼 반가운 일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의 수급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의해 이루어진다. 유전, 탄광에서 생산하여 다양한 공정과 유통경로를 통해 산업체, 가정, 운전자 등 수요자들에게 공급된다. 그들의 관심은 이윤극대화에 있다. 공급자들은 가급적 비싼 값에, 수요자들은 가급적 저렴한 값에 에너지를 소비하고자 한다.
둘째,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에너지 시장은 공급에 여유가 없는 빡빡한 시장이 됐다. 빡빡한 시장은 교란에 취약하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거대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할 경우 시장에 혼란이 온다. 혼란은 각종 경제주체들이 사재기와 같은 헤징행위를 함으로써 더욱 가중된다.
셋째, 빡빡한 시장은 돌발사태에 의해 교란된다. 베네수엘라와 같은 주요 산유국에서의 총파업이나 테러와 같은 인재,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자연재해가 있으면 시장에 주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으레 헤징행위가 뒤따라 그 충격을 증폭한다.
넷째, 빡빡한 시장을 교란하는 것은 주로 정치적 행위다. 파업이나 OPEC과 같은 카르텔의 형성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치행위지만, 무엇보다 1970년대 아랍-이스라엘을 빌미로 한 산유국들의 수출거부에 따른 충격이 컸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해결한 것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외교나 군사행위가 아니었다. 시장이었다. 정유회사들은 높아진 가격으로 인해 새로이 시장성을 띤 유전개발에 나섰다.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허리띠를 졸라맨 소비자를 상대로 자동차회사들은 연비가 뛰어난 자동차 생산에 주력했다.
이렇게 볼 때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국가 간의 지나친 경쟁도 시장을 교란하는 정치적 충격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악순환을 빚으면 국제관계 그 자체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태평양전쟁이 좋은 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다음을 염두에 두고 추진돼야 한다.
첫째, 처칠은 당시 페르시아(이란)의 유전에 의존하던 영국의 현실을 감안, 석유공급원의 다변화를 주문했다. 충격에 민감한 시장을 감안할 때 다변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전략이다.
둘째, 시장의 논리를 감안하면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한 전망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원의 다양화는 필수다.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외에 원자력, 그리고 기타 수력·풍력·태양열과 같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의 개발에 힘을 써야 한다.
셋째, 개별국가 차원의 에너지원 확보노력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시장 교란효과가 나지 않도록 조정돼야 한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인재와 같은 충격에 함께 대처할 수 있는 국제협동체제도 구축돼야 한다.
넷째, 자연자원이 빈약하고 원자력 기술이 뛰어난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원자력의 이용은 비확산체제, 북핵문제, 비핵화공동선언과 같은 국제정치 문제, 그리고 폐기물 처리와 같은 환경문제에 대한 국내적 제약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요컨대 에너지 안보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다. 자원외교에 매진하라고 외교관들을 매질할 게 아니라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다.
김태현·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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