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쇠고기 파고를 넘는다] (상)축산농 강력한 제도시행 요구

원산지 표시·생산이력제 정착…신뢰회복 관건

▲ 축산농가들은 원산지 표시를 철저히 해 미국산 쇠고기의 한우 둔갑 판매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시내 한 식당의 원산지 표시를 해둔 메뉴.
▲ 축산농가들은 원산지 표시를 철저히 해 미국산 쇠고기의 한우 둔갑 판매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시내 한 식당의 원산지 표시를 해둔 메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빗장이 풀렸다. 정부는 광우병 발생 등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는 한편 협상 재개를 요구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감은 여전하다.

국내 쇠고기 시장에 지형변화를 몰고 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응해서 시민들의 광우병 공포를 덜어내고 한우농가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우농가와 축산 관계자, 그리고 소비자들과 식당가의 목소리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원산지 표시·생산이력제가 관건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유통하거나 판매하다 적발되면 1차로 벌금 500만원 이상을 부과하고, 2차로는 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농민·시민단체들도 단속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신고 포상금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전국한우협회 김홍길(48) 의성군지부장의 주장은 "원산지 표시제만이라도 철두철미하게 시행한다면 미국과 캐나다산 쇠고기가 들어와도 자신이 있다"는 한우농가의 절박한 심중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한우농민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대책은 대략 3, 4개로 축약할 수 있다.

▷적정가격을 정해 놓고 그 이하로 떨어지는 부분은 정부가 보전해주는 축산소득보전직불제 시행 ▷조사료 생산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 개발 ▷모든 음식점과 학교·공장·병원·군부대 등 급식단체에 원산지 표시 의무화 ▷원산지 표시 위반시 강력한 법적제재 마련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 축협에 쇠고기 원산지 감별기를 보급해 현장에서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하고, 축협마다 조사료 생산 농기계 세트 일체(시가 2억5천만원 정도)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쇠고기 유통과정의 투명화를 위한 대전제는 원산지 표시 의무화와 생산이력제 시행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경주 외동에서 한우 300두를 키우고 있는 정병우 서라벌목장 대표는 "현재의 원산지 표시 의무제는 법규에 맹점이 많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며 "강력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속반원이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어쩌다 단속되더라도 10만~20만원의 벌금만 부과된다면 무슨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따라서 벌금을 1천만원 이상으로 해야 수입쇠고기 한우 둔갑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농민들은 또 생산이력제의 조기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한우의 출생에서부터 성장·도축·가공·유통 판매 등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기록해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소비자 선택권이 박탈되고 있는 실정이다.

구미축협 정성균 지부장은 "축산농가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정부의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모든 쇠고기의 유통과정을 100% 투명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둘러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것이 아니라 유통질서 확립 대책을 마련한 후에 수입을 재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국한우협회 서후열 경산시지부장도 "쇠고기 유통과정의 투명화와 생산이력제를 추진해 수입 쇠고기의 한우 둔갑 판매를 막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쇠고기 원산지 의무 표시 대상을 현재 논의하고 있는 100㎡ 이상 업소뿐만 아니라 전체 업소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소의 사육에서 쇠고기 판매까지 각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해 위생·안전문제 발생시에는 이동경로를 따라 추적,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하루빨리 도입한다면 국내산 쇠고기 소비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주 천북에서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이성래씨는 조사료 기반 확충을 촉구했다. 그는 "사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마당에 수입 쇠고기가 들어오면 대규모 사육농가는 기반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당국에서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최삼호 경주축협장도 "오른 국제 곡물가를 대부분 농민들에게 전가하다 보니 농민들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며 "생산원가 절감방침이 나오지 않는 한 대부분 농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폐업으로 내몰릴 게 뻔하다"고 했다.

한우협회 이재균 구미지부장은 "낙동강 둔치 등 유휴지를 활용해 곡물 사료를 대체할 수 있는 호밀과 옥수수 등 조사료 생산량을 늘리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양질의 조사료 생산단지 조성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최윤채·이희대·정창구·김진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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