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아웃사이더 기질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아웃사이더 콤플렉스/강준만 지음/개마고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기득권 층과 언론을 상대로 이른바 '투쟁'을 선포했을 때 무척 놀랐다.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이, 정치권력과 관련해 거의 모든 인사권을 쥔 대통령이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은 불길한 조짐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어떤 피해의식이 공격적인 경향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우려대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조짐'을 '현실'로 증명해 주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아웃사이더 기질은 진보성과 상통하지만, 아웃사이더 기질이 곧 진보성은 아니다. 바로 이게 한국의 진보적 정치세력을 헷갈리게 해 자주 오판을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아웃사이더 기질은 수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과장된 피해의식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그 과장된 피해의식마저도 자기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쓰일 수 있지만, 뜻을 이뤄 를 한 후 정치·통치 영역에 들어선 뒤엔 독약이 될 수 있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일부 아웃사이더 유권자들은 노무현이란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내장과 발산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낮은 곳에 있었을 때엔 아름답던 아웃사이더 기질이 높은 곳에 오르면 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게다.'

'노무현 현상의 축복과 저주'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산문집은 어떤 노무현 정권비판보다 따갑게 들린다. 처음부터 노무현 정부에 적대적이었던 사람이 내뱉는 '독설'이라면 어느 정도 접고 들어가는 점수가 있다. 그러나 강준만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여러 가지 책과 칼럼을 통해 노무현 옹호론을 펴온 '노빠 중에 노빠'였다.

강준만은 이른바 '민주당 분당 사태'를 결정적 계기로 노무현 지지를 접었다. 그리고 노무현을 잘못 판단해 쓴 지금까지 쓴 숱한 글들에 대해 엄중한 자기비판의 자세로 이 책을 펴낸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식으로 건 제가 과거 노무현에 대해 썼던 글에 가져야 할 '책임윤리'는 글쟁이로서 존재의 근거"라고 말한다. 이 책이 유난히 따가운 것은 노무현을 지지했던 강준만의 비판이기 때문이다.

책은 강준만이 2005년 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여러 매체에 썼던 칼럼을 묶었다. 이미 임기를 마친 대통령, 끝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이 다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면 별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좀 더 확장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른바 '권력의 중심에 선 아웃사이더' 혹은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듯하다. '아웃사이더는 무조건 싫다'는 '인사이더들'에게도 교훈이 될만한 책이다.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는 노무현과 노 정권만의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를 진보성으로 착각하지 말자. 그게 바로 이 책의 메시지라면 메시지다.'

사람은 자리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달라져야 한다. 눈을 새파랗게 뜨고 싸움닭처럼 나서던 청년도 40, 50대 회사의 중역이 되면 그래서는 안 된다. 중역은 통합하고 끌고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가 중역이 돼서도 여전히 비아냥거리기 좋아하고, 자기 주장만 소리 높여 외쳐된다면 중역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

20대 청년은 '정의로운 목표'를 위해 이해와 설득이라는 수단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다소간 그런 점은 용인된다. 그러나 50대 중역은 '정의로운 목표'를 다소 양보하더라도 이해와 납득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지도자는 상대가 원인을 제공한다고 함께 '깽판'을 놔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자리는 상대가 부리는 '깽판'까지 껴안아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판을 접자'고 말할 때 책임은 지도자가 지는 것이다.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지도자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 노 정권의 실패는 이런 점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가 정의롭기에 수단은 거칠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국민들은 노 정권의 '정의로운 목적'에 동의했지만 '거친 방법'에 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강준만은 '과장된 피해의식만이 전부는 아니다. 열악한 처지에서 높은 곳을 향하다보면 권모술수의 내재화 현상이 일어난다. 남들이 보기엔 권모술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 진정성의 발로일 뿐이다. 자신이 아웃사이더요 약자라는 걸 '만병통치용 면죄부'로 삼는다. 아웃사이더 기질을 밖으로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일수록 그 구분 능력이 박약하다'고 말한다.

강준만은 '노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보수신문을 상대로 정치·행정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경제문제만 하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국민을 위로하면 좋겠는데, 보수신문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허풍이 자주 발생한다. 노 정권은 보수신문이라는 극단을 상대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중간을 소홀히 한다. 중간에 있는 다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분노의 독설을 자주 구사한다. 독설은 원래 제도적 권력을 갖지 못한 평론가들의 무기가 아닌가. 평론가들의 밥그릇을 빼앗겠다는 건가? 아니면 독설에 의한 카타르시스 정치를 구사하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골수 고정표의 지지를 다지는 데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중간에 있는 다수는 더욱 멀어질 텐데…' 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최고 권력자이며, 통수권 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비판에 다름 아니다.

지은이 강준만은 급기야 '노무현이 아웃사이더를 죽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노무현의 실패는 사회·문화적 소수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편견을 정당화하고 강화함으로써,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정치 중심에 서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 강준만은 노무현에게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진보정당으로 가지 않고 한나라당으로 가는 이유를 '아웃사이더 죽이기' 효과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376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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