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한심한 오역(誤譯)

신학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직업은 목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예수의 전기를 쓴 A. N. 윌슨에 따르면 목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테크톤(techton)은 아람어인 나가르(naggar)를 번역한 것이다. 나가르는 교양인이나 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더 도발적인 주장도 있다. 예수의 어머니가 처녀라는 것은 오역이 낳은 터무니없는 전설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헤브루어(almah)를 처녀를 뜻하는 그리스어(parthenos)로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위대한 책은 큰 죄악이다." 1960년에 을유문화사가 번역 출간한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서양의 지혜' 첫 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위대한 저서가 큰 죄악이라니. 인류의 정신을 살찌우는 지적 연마의 산물이 죄악이라면 이 세상에 죄악 아닌 것이 있을까. 위대한 저서가 죄악이 된 이유는 誤譯(오역) 때문이었다. 그 원문은 'A great book is a great evil'로 여기서, 'great'는 '큰' 또는 '두꺼운'이란 뜻이다. 원래는 알렉산드리아 시인 칼리마코스가 "두꺼운 책은 귀찮다"고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엉뚱하게 번역한 것이다. 문제는 30년 뒤에 이 책이 다시 출간되면서 오역이 한술 더 떴다는 점이다. "위대한 책치고 악하지 않은 것은 없다"(문화의 오역, 이재호)

이 같은 오역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오역은 우리들에게 술안주거리 정도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이로 인해 국외의 뉴스나 서적을 원어로 해독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나 지식을 줘 교양에 문제를 야기할 '위험'은 있지만….

그러나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의 오역은 곧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1945년 연합국은 포츠담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비공식 요구였지만 최후통첩이 분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연합국의 공식적인 최후 통첩이 올 때까지 항복을 미루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본 내각은 포츠담 선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설명하면서 "일본 내각은 모쿠사츠'(默殺, もくさつ)의 입장을 견지한다"고 발표했다. 모쿠사츠의 사전적 의미는 '무시하여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 말을 사용한 일본의 의도는 '발표를 당분간 미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언론은 이 말의 사전적 의미대로 '무시한다'고 해석했고 대외 선전을 담당했던 '라디오 도쿄' 역시 그렇게 방송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 보도를 접한 지 사흘 만에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국 정부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내용을 우리 정부가 잘못 해석한 것으로 드러나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 파문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 정부의 오역을 들여다 보면 기가 막힌다. 중학교 수준의 영문해석 실력이라도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실수이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가 아니라면(unless)'을 '∼라 하더라도(even if)'로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개정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미만의 소의 뇌와 척수를 포함한 모든 부위로 만든 동물성 사료로 사육한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협상내용이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실무적 실수" "30개월 미만의 소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아니므로 실제적 차이는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너무 구차해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오역이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것이다. unless와 even if는 중학생도 무슨 뜻인지 안다. 이를 동시통역도 가능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전문가가 혼동했다는 것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오역은 실수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고의적인 은폐 또는 묵인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 잘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이 정부의 실용 코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역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정경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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