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쇠고기 파고를 넘는다] (하)소비자, 알고 먹자

유통 투명성 확보가 '食주권'

▲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맞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감시활동을 펴는 등 스스로
▲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맞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감시활동을 펴는 등 스스로 '식주권'을 챙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구의 한 백화점 식품매장에 진열된 한우 쇠고기 매장.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이 고기 한우 맞아요?"

13일 오후 7시쯤 대구 중구의 K갈비 식당. 8명의 손님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우 갈비살을 주문했다. 고기가 나오자 일행 중 한명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더니 종업원에게 한우가 맞는지를 물었다. 그는 "한우만 취급하는 식당인 줄은 알지만 한번 더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맞바람으로 '쇠고기, 이제는 알고 먹자'는 분위기가 소비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식당이 내건 간판의 문구가 사실상 전부다. 만일 식당에서 쇠고기의 원산지와 종류를 속이면 소비자는 그대로 당한다. 김진영(43·수성구 범어동)씨는 "유명하거나 값이 비싸면 한우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며 "일반인이 맛을 보고 구별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업주의 양심을 믿는 길뿐"이라고 했다.

◆음식업계, 유통 투명성이 관건

쇠고기의 유통 투명성은 미국 쇠고기 수입 파고를 넘는 최대 관건이다. 정부가 현재 300㎡의 식당에 적용되고 있는 원산지 의무표시제를 내달 22일부터 100㎡로 확대키로 한 것도 쇠고기 유통의 불신을 없애겠다는 의지에서다. 그러나 식당 등 쇠고기 유통업자들의 적극적인 동참 없이는 '정직한 먹을거리' 구상은 실현되기 어렵다.

"수입산 갈비살을 한우 갈비살로 속여 팔진 않아요. 하지만 다른 부위나 등급이 낮은 고기를 섞어 팔면 소비자들은 알 길이 없어요."

식당들은 원산지 표시제만으로는 쇠고기 부정유통을 뿌리 뽑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국내산과 수입산을 구별하는 원산지 표기 의무화에 더해 육우, 젖소 등 쇠고기 품종 표기 정착도 급선무다. 축산물가공처리법에 따르면 쇠고기 판매점에서는 한우, 육우, 젖소 등 쇠고기 종류를 표시하도록 돼 있으나 이를 지키는 식당은 거의 없다.

국립농수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김석중씨는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것보다 육우나 젖소를 한우로 속이거나 섞어 파는 것이 더 문제"라며 "단속도 쉽지 않아 한우의 유통·판매를 더욱 혼란케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동아백화점 축산바이어 박병구 과장은 "한우, 육우, 젖소 등은 일단 칼을 대서 가공처리하면 전문가조차 쉽게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안전한 쇠고기는 육류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B갈비 식당(북구 노원동) 업주는 "대형 업소는 산지에서 직접 고기를 구매할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소규모 식당은 중개인을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산지 표시를 확인하더라도 속을 수 있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식당업주들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매입하는 자세를 지적했다. 한 유통업자는 "식당들이 최저가 납품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계약을 따내려면 최대한 가격을 낮춰야 하고 시장가격보다 낮을 경우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섞어 팔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식당, 소비자 나서자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잔뜩 민감해진 소비자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업계가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유통업자나 식당들의 자정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달 대구 수성구의 30개 한우전문음식점들이 구청과 맺은 '한우전문 음식점 인증제'가 한우 유통의 불신풍조를 잠재울 좋은 본보기가 될지 주목된다. 식당들이 스스로 순수 한우만 취급하겠다며 선언하고 구청은 이를 확인, 향후 관리까지 책임지겠다고 한 것.

쇠고기 유통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김용구 유통관리과장은 "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업소를 찾을 때마다 도축증명서를 확인하고 언제 잡았는지, 암소인지 수소인지, 등급은 어떤지를 살피는 등 적극적인 감시활동이 요구된다"고 했다. 쇠고기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소비자들이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좀더 적극적으로 '식(食)주권'을 챙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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