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마이클 무어라는 소문난 악동의 '식코(Sicko)'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은근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의료보험에 얽힌 당신이 알아야 할 충격적 진실! 돈 없으면 죽으란 말이요?'라는 자못 도발적인 문구처럼, 영화는 이윤 극대화에만 눈먼 미국 민영의료보험제도 아래에서 벌어지는 음울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그러잖아도 미국은 세계 최첨단의 의료와 서비스를 자랑하는 지상 천국과 전인구의 15%가 넘는 국민이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린 지옥이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다. 의료보험이 없는 5천만명 중에서, 해마다 변변한 치료 한 번 못 받아보고 숨지는 사람이 1만8천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괴담이 아닌 현실이란다. 정작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것들이 단지 무보험자들만의 악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영보험 가입자들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구실로 솎아내 진료를 거부당하고, 뒤에서 부당 진료비 회수라는 명목으로 다시 한번 더 훑어가는 현실을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파산 가정 절반이 의료비 때문에 생긴다는 주장이 그리 생뚱맞아 보이지만은 않는 까닭이다.
보험이란, 사전식 뜻풀이 그대로 '우연한 사고로 인해, 일시에 목돈이 들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적립해 두었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수요에 충당하게 하는 제도'이다. 개인적으로는 젊고 건강할 때 늙거나 병들 때를 미리 대비하고, 사회적으로는 혼자 감당키 어려운 부담을 여럿이 나누어 가지자는 것이다. 불안한 미래를 위한 준비이고, 불안정한 이웃끼리의 품앗이인 셈이다. 여기에 '민영'이라는 장삿속이 끼어들면서, 본디 뜻이 뒤틀리고 심지어 앞뒤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고비용 저수익의 늙고 병든 '불량그룹'은 관심 밖이다. 하물며 가난하기까지나 하다면 말이다. 어차피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자는 것이 장사꾼의 지극히 당연한 셈법이 아닌가. 시장판의 이런 본바탕마저 부정할 만큼 감독이 우악스럽지는 않다. 다만 해도 해도 너무 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고, 혹시라도 미국을 닮아 보고자 안달이 난 나라에 대한 경고일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혹자는 지금의 우리 처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터무니없이 부풀리고, 악의적으로 선동할 뿐이라고 짐짓 나무란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세상살이에서 '보험 든다'라는 말 자체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혹은 제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대한 액막이가 아니던가. 당신이 지금은 젊거나 건강하거나, 혹 부유하더라도 꼭 한번 만나보기를 권한다. 설령 당장 먹고살기에 바빠 내 코가 석자라도,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식코'를 말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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